나에게서, 예수님은 누구입니까?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마태복음 16장 13-18절

[13] 예수께서 빌립보의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서,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고 하느냐?” [14]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엘리야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예레미야나 예언자들 가운데에 한 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15]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셨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십니다.”

[17]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시몬 바요나야, 너는 복이 있다. 너에게 이것을 알려 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시다. [18] 나도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다. 나는 이 반석 위에다가 내 교회를 세우겠다. 죽음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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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말씀대로, 베드로가 말한 신앙고백, 즉,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곧 그리스도이시다” 라는 신앙 위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세계 모든 교회가 이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라는 말의 뜻은, 언어적으로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 라는 뜻이지마는, 그 의미는, ‘세상을 구원하실 분’ 이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 신앙고백의 근거를 예수님 앞에서는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토론의 자리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이후에, 예루살렘에서 성령강림의 대사건이 있었던 날, 거기 모인 군중들에게 설교를 하는 자리에서, 그 신앙고백의 배경설명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설교(행2:14이하)는, 지난 2천 년 동안 교회가 지닌 “예수가 구세주(그리스도)이다” 라는 기독교 신앙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변론이 되고 있습니다.

즉, 주전 1천 년, 다윗왕이 예언하기를 장차 그의 후손 가운데서 구세주가 태어나리라고 했는데, 그 예언된 구세주가 바로 예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논증은, 유대인 중의 어떤 사람들에게는 설득력이 있었을런지 몰라도, 세계인을 설득시킬 수 있는 논증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철저히 구약성경에 의존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신앙고백을 한 사도 바울이 그 나름의 변론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분봉 왕 헤롯의 뒤를 이은 아그립바왕 앞에서 바울이 행한 간증이었습니다. 그 기록이 다행히도 사도행전(26장 1-29절)에 실려서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즉, 유대인의 율법주의 신앙전통에 충성을 다하던 바울(그 때는 ‘사울’이었음)에게, 예수님께서 갑자기 출현하시고, 그의 인생에 개입하십니다. 그래서 그의 삶에 방향 대전환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는 감동을 주는 간증으로 읽히지만, 이것 역시 주관적인 간증일 뿐이지, 객관적인 설득력이 있는 논증은 아니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부분의 서술은, 사람들의 ‘신앙적’ 경험을 후대에 전하기 위해 기록한 것이므로, 사람들이 말하는 ‘신화’의 범주를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서술 자체가 논리적이지 않고, 합리성을 입증하는 데에서 거리가 멉니다. 하지만 신앙의 근거를 성경에 두어야 하는 설교자들은 자신의 변증의 토대를 성경에 둡니다. 그래서 논거가 약하게 될 위험성을 늘 안고 있습니다. 전제가 성경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 기독교 저술가들은 자신의 간증을 논증의 근거로 하는 경우가 많고, 또 독자들에게도 설득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변증신학자 알리스타 맥그래스(그의 저서 ‘기독교변증’)도 역시 자신의 간증이 그의 변론의 근거인 것을 봅니다.

여러분은 어떤 신앙의 경험이 여러분의 신앙생활을 지탱하고 있는 근거입니까? 여러분에게서 하나님은 누구이며, 예수님은 누구입니까? 이것을 수시로 여러분의 대화자들과 말씀을 나누시며 사십니까?

<기도> 주 하나님, 성경을 통하여 용기를 얻어, 저희도 하나님을 경험하게 도와 주시옵시고, 저희도 예수님을 경험하게 도와 주시옵시고, 저희도 성령님의 임재 가운데 살아가게 도와 주시옵소서. 그래서 또 하나의 간증의 사람으로 세상에 그리스도를 나타내며 살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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