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로마서 4장 1-12절 (새번역)
[1] 그러면 육신상으로 우리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고 우리가 말할 수 있겠습니까? [2] 아브라함이 행위로 의롭게 되었더라면, 그에게는 자랑할 것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3]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다고 여기셨다” 하였습니다. [4]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품삯을 은혜로 주는 것으로 치지 않고 당연한 보수로 주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5] 그러나 경건하지 못한 사람을 의롭다고 하시는 분을 믿는 사람은, 비록 아무 공로가 없어도, 그의 믿음이 의롭다고 인정을 받습니다. [6] 그래서 행한 것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여겨 주시는 사람이 받을 복을 다윗도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7] “하나님께서 잘못을 용서해 주시고 죄를 덮어 주신 사람은 복이 있다. [8] 주님께서 죄 없다고 인정해 주실 사람은 복이 있다.”
[9] 그러면 이러한 복은 할례를 받은 사람에게만 내리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에게도 내리는 것입니까? 우리는 앞에서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하였습니다. [10] 그러면 어떻게 아브라함이 그러한 인정을 받았습니까? 그가 할례를 받은 후에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할례를 받기 전에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할례를 받은 후에 된 일이 아니라, 할례를 받기 전에 된 일입니다. [11] 아브라함이 할례라는 표를 받았는데, 그것은 그가 할례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이미 얻은 믿음의 의를 확증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할례를 받지 않고도 믿는 사람의 조상이 되었으니, 이것은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들도 의롭다는 인정을 받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12] 또 그는 할례를 받은 사람의 조상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할례 만을 받은 것이 아니라 또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걸어간 믿음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사람들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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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4장은 또 하나의 어려운 장입니다. 그래서 읽고 또 읽고 또 읽고 묵상했습니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은 순서를 만들었습니다. (1) 믿음 – (2) 하나님의 인정 – (3) 할례
이것은 아주 간단한 순서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순종하며 살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몸에 할례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신다는 ‘표’를 남기는 관습을 시작하도록 하셨고, 이로써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신다는 할례를 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런 뜻입니다.
바울이 로마서 4장에서 말씀하고자 한 의도는, (1)번은 무시하고, (3) – (2), 즉 “(3) 할례를 받은 사람은, (2)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사람이 된다” 이렇게 말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3) – (2) 순서가 맞다’ 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할례를 ‘끈질기게’ 주장했던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할례는 포경수술이었습니다. 남자들만 받을 수 있습니다. 유대인 남자들만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사람이냐?” 라는 말을 대신해서 “그 사람 할례 받았어?” 라고 말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사도 바울이 생각하기에, 얼마나 한심했겠습니까?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할례를 가지고 여러분을 선동하는 사람들은, 차라리 자기의 그 지체를 잘라 버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갈5:12) 고 극언을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구약시대의 관습인 할례를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다만 (1) – (2) 만이 남았습니다. 말하자면, “(1) 순종의 믿음으로 (2)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믿음의 사람으로 인정받는다” 이 신앙을 남기고, (3)은 없어졌습니다. 다만 그런 의학적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만이, 병원으로 가서, ‘(1) 믿음’ 과는 상관없이 시술을 받습니다.
아브라함이 어떤 믿음의 증거가 있었습니까? 그래서 저는 창세기(12장 이하)로 돌아가서 아브라함의 생애를 살펴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롬4:2)이 말하는 대로, 아브라함에게는 남달리 믿음이 강했다는 흔적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내에게 “누이라고 말해라” 고 거짓말이나 시키고, 보통 사람들 처럼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믿음의 사람’ ‘믿음의 조상’ 까지 되는 것입니까?
아브라함에게 믿음의 흔적 한 가지는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들 이삭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모리아 산으로 가서 제물로 바치려고 한 것, 이것은 정말 위대한 순종입니다. 저는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을 아브라함은 했습니다. 이것 하나는 정녕, 그의 대단한 순종의 믿음이었습니다.
저희들 가운데 대부분은, 뚜렷한 믿음의 증거는 없더라도,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살았더라면, 우리들의 오늘의 생이 얼마나 해괴망측하게 되었을까를 돌이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나마 믿음의 자부심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들의 공로라고 말 못하지요. 하나님의 믿음 때문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믿음이 아닙니까?
<기도> 주 하나님, 믿음으로 하나님과 연합하게 된 것을 감사드립니다. 이 소중한 믿음을 저희가 흔들림없이 간직하며 살고, 우리들의 사랑하는 사람들도 모두 이 믿음의 상속자들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