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새번역)
<< 이사야서 40장 3-5, 9-11절 >>
[3] 한 소리가 외친다. “광야에 주님께서 오실 길을 닦아라. 사막에 우리의 하나님께서 오실 큰 길을 곧게 내어라. [4] 모든 계곡은 메우고, 산과 언덕은 깎아 내리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하고, 험한 곳은 평지로 만들어라. [5] 주님의 영광이 나타날 것이니, 모든 사람이 그것을 함께 볼 것이다. 이것은 주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것이다.”
[9] 좋은 소식을 전하는 시온아, 어서 높은 산으로 올라가거라.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예루살렘아, 너의 목소리를 힘껏 높여라. 유다의 성읍들에게 “여기에 너희의 하나님이 계신다” 하고 말하여라. [10] 만군의 주 하나님께서 오신다. 그가 권세를 잡고 친히 다스리실 것이다. 보아라. 그가 백성에게 주실 상급을 가지고 오신다. 백성에게 주실 보상을 가지고 오신다. [11] 그는 목자와 같이 그의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들을 팔로 모으시고, 품에 안으시며, 젖을 먹이는 어미 양들을 조심스럽게 이끄신다.
<< 사도행전 13장 23-26절 >>
[23]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다윗의 후손 가운데서 구주를 세워 이스라엘에게 보내셨으니, 그가 곧 예수입니다. [24] 그가 오시기 전에, 요한이 먼저 회개의 세례를 모든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포하였습니다. [25] 요한이 자기의 달려갈 길을 거의 다 갔을 때에 말하기를 “여러분은 나를 누구로 생각하십니까? 나는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그는 내 뒤에 오실 터인데,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어드릴 자격도 없는 사람입니다” 하였습니다. [26] 아브라함의 자손인 동포 여러분, 그리고 여러분 가운데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여, 하나님께서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습니다. …”
<< 누가복음 1장 57-66, 80절 >>
[57] 엘리사벳은 해산할 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58] 이웃 사람들과 친척들은, 주님께서 큰 자비를 그에게 베푸셨다는 말을 듣고서, 그와 함께 기뻐하였다. [59] 아기가 태어난지 여드레 째 되는 날에, 그들은 아기에게 할례를 행하러 와서, 그의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그를 사가랴라 하고자 하였다. [60] 그러나 아기 어머니가 말하였다.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해야 합니다.” [61] 사람들이 말하였다. “당신의 친척 가운데는 아무도 이런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없습니다.”
[62] 그들은 그 아버지에게 아기의 이름을 무엇으로 하려는지 손짓으로 물어 보았다. [63] 그가 서판을 달라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다” 하고 쓰니 모두들 이상히 여겼다. [64] 그런데 그의 입이 곧 열리고 혀가 풀려서, 말을 하며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65] 이웃 사람들은 모두 두려워하였다. 이 모든 이야기는 유대 온 산골에 두루 펴졌다.
[66]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이 사실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이 아기가 대체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하고 말하였다. 주님의 보살피는 손길이 그 아기와 함께 하시는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 [80] 아기는 자라서, 심령이 굳세어졌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나는 날까지 광야에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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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교회가 성인으로 모시는 세례 요한의 탄생일입니다. 그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정녕, “여인이 낳은 자 중에 가장 훌륭한 사람” 이었습니다. 그의 일생을 통하여 “메시아의 오실 길을 예비하는 사명” 을 완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모친 엘리사벳과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가 가까운 친척이었던 것 (눅1:39이하 참조) 을 보면,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을 처음 만난 것이, 요단 강가에서의 만남 (마3:13이하) 이 아니라, 벌써부터 교제가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세례 요한에게서 ‘회개의 세례’를 받기 위해 운집했던 많은 사람들 틈에, 예수님도 끼여, 세례를 받고자 했을 때의 요한의 말을 들어 보세요. “내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내게 오셨습니까?” (마3:14) 이것은, 세례 요한이, 분명히 자기의 친족 예수께서 메시아이신 것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하지만, 요한은 그의 많은 고난의 와중에서, 그의 생애를 이끌고 온 신념, “메시아의 길을 예비할 사명” 에 대해서 다른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영혼의 흔들림을 받고 있었습니다. 즉, “자기의 제자들을 예수께 보내서, 물어 보게 하였다” 하였습니다. “오실 그분이 당신이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마11:3)
예수님을 “통치자 가운데 현저히 큰 통치자로 임하실 메시아”로 인식하던 ‘유대인들의 대망의 메시아’ 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요한 자신이나 마찬가지로, 권세가들에게 당하기만 하는 예수님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가서 요한에게 이렇게 전하라” 하시며, 메시아가 이루실 예언의 말씀 (이사야61:1이하) 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다시 확신을 가지고 사명을 다한 후에, 헤롯의 칼날에 목이 베여 일생을 마칩니다. (마14:3이하) 진정 훌륭한 생애를 마쳤습니다.
세례 요한이 “메시아의 오실 길을 예비하는 사명” 이 있었다면, 우리들에게는 무슨 사명이 있을까요? “메시아가 다녀가신 길을 증거하는 사명” 이 있다고 믿습니다. 예수님 이후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바로 이 사명을 가지고 사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생애에서, 무엇이 우리 인생의 의미인지를 깨닫게 된 것을, 어떻게 사는 것이 인생을 사는 보람인 것을, 무엇이 우리들의 생애에서 이루어야 할 사명인 것을 깨달았으면, 그것을 증언하기 위해 우리들의 일생을 사는 것, 바로 이것이 우리들이 맡은 사명이 아니겠습니까?
제 할머니에게 복음을 심어 준 고 김인서 목사도 그런 일생을 살았고, 몸이 불편해서 6.25 동란 때에 평양 서문밖교회 사택에 남아 김일성 치하에서 일생을 마쳤을 저의 할머니 정대옥 여사도 그런 일생을 살았고, 비록 54세에 교회 강단에 마지막으로 서서 복음을 외치다 가신 저의 아버지 이재면 목사도 그런 일생을 살았습니다.
이 거룩한 사명의 맥락 속에서 저와 여러분이 오늘을 살고 있습니다.
<기도> 주 하나님, 세례 요한의 생애를 통해 저희의 사명도 생각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희도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날까지, 흔들림없이 이 사명 속에 살다가, 이 사명의 전선에서 저희의 생을 마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