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마태복음 22장 34-40절 (새번역)
[34]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가 사두개파 사람들의 말문을 막아버리셨다는 소문을 듣고, 한 자리에 모였다. [35] 그리고 그들 가운데 율법 교사 하나가 예수를 시험하여 물었다. [36] “선생님, 율법 가운데 어느 계명이 중요합니까?” [37]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 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하였으니, [38] 이것이 가장 중요하고 으뜸 가는 계명이다. [39] 둘째 계명도 이것과 같은데,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한 것이다. [40] 이 두 계명에 온 율법과 예언서의 본 뜻이 달려 있다.”
* * * *
첫째로 중요하고 으뜸 가는 계명은 ‘하나님 사랑’ 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목숨을 다해, 뜻을 다해 사랑하라는 계명입니다. (신명기6:5) 왜 그토록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까?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 배경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을 끔찍이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를 소상하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그 세상의 관리권을 송두리째 우리 인간에게 맡겨 주신 사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한 민족을 먼저 택하시어, 하나님을 알고 섬기는 백성으로 삼으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민족,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각종 훈련을 받게 하시는데, 특별히 이집트에서 종살이를 당하게 하십니다. 그 종살이 뒤끝에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인도를 받아 가나안까지 돌아오는 역사를 상세히 알려 주십니다.
이런 오랜 사랑의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내리신 명령이 ‘하나님 사랑’ 이었습니다.
그러면 신약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계명을 지킬 필요가 없는 것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다 아는대로, 우리가 아직 하나님을 모르고 있을 때에, 이미 하나님께서 당신의 외아들을 인간으로 이 세상에 보내시어, 대속의 제물로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들은 죄의 종으로 살아야 하는 운명에서 벗어났습니다. 이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당연히 첫째 으뜸 계명인 ‘하나님 사랑’ 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려는 우리의 간절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먼저 알려고 노력하면서, 그 말씀의 기준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살아갑니다.
둘째 계명 즉 ‘이웃 사랑’ 의 계명은 ‘역지사지의 계명’ 입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 속에 내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 입장에서의 나의 요구가 무엇일런지 생각나는 바가 있거든, 그대로 행할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웃 사랑’의 계명입니다. 엄청난, ‘사랑 실천’ 의 기준입니다. 내가 바라는 대로, 내가 해 주라는 것이니까, 얼마나 구체적입니까?
지난 54년 동안 저와 제 가족을 섬겨 준, 고맙고 고마운 제 아내에게도 이런 사랑을 하지 못하는 저의 모습을 보면서, 이것은 실천이 불가능하다고 지레 비겁한 포기선언을 해야 하는 걸까요?
하지만 거꾸로, 가족을 통해서 ‘이웃 사랑’ 을 훈련 받으라고 하나님께서 가장 가까운 이웃인 가족을 주신 것이니, 일단 가족들과의 사이에서 ‘둘째 계명’ 지키는 훈련을 잘 쌓아 가지고, 그 이웃 사랑의 힘이 넘쳐 흘러 이웃을 사랑하며 살도록 합시다.
<기도> 주 하나님, 저희에게 사랑의 계명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희를 먼저 극진한 사랑으로 돌보시는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과, 이웃의 사랑을 받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저희 자신들도, 저희의 이웃을 돌보며 살라는 계명, 이것들은 모두 마땅하고 옳은 사랑의 계명들이오니, 저희가 받들어 지키며 살도록, 성령님,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