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누가복음 10장 27-37절
[27] “… 또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하였습니다.” [28]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대답이 옳다. 그대로 행하여라. 그리하면 살 것이다.” [29] 그런데 그 율법교사는 자기를 옳게 보이고 싶어서 예수께 말하였다.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30]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이 옷을 벗기고 때려서, 거의 죽게 된 채로 내버려두고 갔다.
[31] 마침 어떤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32] 이와 같이, 레위 사람도 그 곳에 이르러 그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33] 그러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길을 가다가, 그 사람이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34] 가까이 가서, 그 상처에 올리브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에, 자기 짐승에 태워서,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주었다.
[35] 다음 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어서, 여관 주인에게 주고, 말하기를 ‘이 사람을 돌보아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오는 길에 갚겠습니다’ 하였다. [36]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서 누가 강도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37] 그가 대답하였다.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여라.”
* * * *
예루살렘은 고지대에 있는 도시였고, 여리고는 예루살렘보다 1천 미터 정도 낮은 곳에 위치한 도시입니다. 민가가 별로 없는 언덕 길로 약 70리 정도를 내려와야 하는 길이었습니다. 이 한적한 길에는 가끔 강도가 출몰해서, 여행자들을 해치고, 가진 물건을 빼앗아 가곤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등장하는 사마리아 사람의 고마운 행실은 지어낸 비유 이야기라기보다 실제로 있었던 일을 말씀하시는 것 같기도 합니다. 또 얼마든지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었다고 봅니다.
강도 만나서 강도들에게 맞아 거의 죽게 되었던 사람은 유대인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사마리아인 영세사업가가 지나가다가 발견했던 것입니다. 평소에 유대인들은 스스로 선민의식을 가지고 살기 때문에, 사마리아 사람들을 하나님께 저주받은 백성으로 취급해서, 부정 탄다고 말도 걸지 않는 관계였습니다.
그런 점을 생각한다면, 사마리아인 사업가는 못본척하고 지나갈 수도 있었습니다. 또 유대인의 입장에서 보아도, 사마리아 사람이 그냥 지나갔다고 해도 ‘사마리아인이니까 그랬겠지’ 하고 말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마리아 사람은 가던 길을 멈추고, 그에게 응급처치를 해 주고, 자기가 타고 가던 짐승에 태워 여관에까지 데리고 가서 밤새 돌보아 주고, 다음날 그의 비즈니스를 위해 여관을 나오면서, 여관 주인에게 간호해 줄 것을 부탁합니다. 치료에 비용이 들까봐서 걱정을 해 주기도 합니다. 이런 고마울 데가 어디 있겠습니까?
저의 머리에는 일본사람이 떠올랐습니다. 조선시대에 줄곧 한반도로 쳐들어와서는, 우리 선조들을 죽이고, 재산 빼앗아가기를 계속했던 일본족속들 아닙니까? 그래서 조선이 끝장 났고요. 한국이 일본의 속국이 되어 온 국민이 창씨개명까지 당하고, 우리 언어마저 잃은 채 36년을 지내야 했습니다.
그러고도 한국을 가장 혐오하는 나라가 일본인들이라니, 정말 괘씸합니다. 이런 내력을 아는 한국사람들은, 일본이 지금이라도 어서 망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심지어 어떤 한국인들은 일본열도가 고스란히 바다 밑으로 사라져 줬으면 좋겠다고 염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일본이 정말 바다 밑으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염려스런 관측이 보도되기도 합니다. 해수면은 높아지고, 일본열도의 지반은 점점 낮아져서, 또는 화산이 폭발하고 큰 지진이 나면서, 일본은 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그런 미래예측을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저는 그런 일이 정말 일어난다면, 제가 아는 일본 사람들을 제 집에 모셔야 하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생깁니다. 제가 착해서가 아니라, 여기 본문에 나오는 사마리아 사람에게 배워서 그런 생각이 나는 겁니다. 집이 비좁아도, 함께 살자고 제의하고 싶은 것입니다.
프랑스 화가인 조르주 루오의, 제목이 긴 판화, ‘향나무는 자기를 찍는 도끼날에도 향을 묻힌다’ 그림에는, 흡사, 십자가에서 방금 운명하신 예수님을 무덤으로 모시는 몇 분의 천사같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기도> 주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되어 인간세상에 오셔서, 온갖 멸시와 천대를 받아, 심지어 죄인으로 취급 받아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에게 2천 년 동안 천상의 향기, 진리와 사랑의 향기를 뿜으셨습니다. 그런 향기를 닮은 그리스도인으로 저희가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