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열렬히 추종하던 여제자들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새번역)

< 1 > 예수님의 여제자들 : 누가복음 8장 2-3절

[1] 그 뒤에 예수께서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며 그 기쁜 소식을 전하셨다. 열두 제자가 예수와 동행하였다. [2] 그리고 악령과 질병에서 고침을 받은 몇몇 여자들도 동행하였는데, 일곱 귀신이 떨어져 나간 막달라 라고 하는 마리아와 [3] 헤롯의 청지기인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그밖에 여러 다른 여자들이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의 일행을 섬겼다.

** 예수님의 제자들을 꼽으라고 하면 대체로 열두 제자들을 먼저 꼽습니다. 그들은 어부로부터 세관원에 이르는,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던 이들이었고, 모두 남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 만은 예수님께 여제자들이 있었던 것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가족을 두고 떠나온 이들도 있었고, 독신으로 보이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진심으로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환영했고, 힘써 예수님의 메시아 사역이 성공하기를 바랐습니다.

여자로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일에는, 남자 제자들이 겪었던 어려움을 훨씬 능가하는 애로와 고통이 있었을 것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밤을 노천에서 노숙해야 하는 여행을 줄곧 따라다녀야 했고, 수많은 일행을 위해서 식사준비를 한다든가 잡역을 맡고 있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와 같은 중요한 일을 해야 하는 여제자들의 섬김을, 모든 복음서가 그리 상세히 소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마치 당연한 수고로 취급하듯이 말입니다. 복음서에는, 예수님의 부활사건을 전후해서 여제자들의 활동이 약간 소개되어 있을 뿐입니다.

< 2 >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의 증인인 여제자들 : 요한19:25, 20:1-2, 15-16

[25] 그런데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예수의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사람 마리아가 서 있었다.… [20:1] 주간의 첫 날 이른 새벽에 막달라 사람 마리아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 어귀를 막은 돌이 이미 옮겨져 있었다. [2] 그래서 그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갔습니다.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습니다.” …

[15] 예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여자여, 왜 울고 있느냐? 누구를 찾고 있느냐?”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줄 알고 “여보세요, 당신이 그를 옮겨 놓았거든, 어디에다 두었는지 내게 말해 주세요. 내가 그를 모셔 가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6]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다. 마리아가 돌아서서 히브리 말로 “라부니!” 하고 불렀다. (그것은 ‘선생님!’ 이라는 뜻이다.)

**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의 증인이 누구였더냐를 예수님의 제자됨의 중요한 요건으로 본다면, 단연코 여제자들이 제자가 될 자격이 더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별히 이들 가운데도 막달라 마리아가 수난의 현장에도 가장 가까이 있었고, 부활의 현장에도 가장 가까이 있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에게 시달리던 여자였다고 했습니다. (눅8:2) 말하자면, 여러 가지 심각한 질환으로 지쳐 있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귀신들을 모두 내쫓아 주셨습니다. 그는 이 은덕을 갚는 의미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이상을 실현하려는 소망으로서도, 자기의 재산을 다 기울이고, 여생을 다 바쳐 주를 섬기기로 작정했고, 또 혼신을 다했습니다.

저는 오늘날에도, 수많은 예수님의 ‘여제자’들이 막달라 마리아의 후예들로 살고 있음을 봅니다. 교회와,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 그들이 바치는 수고에 의해, 교회의 선교활동은 유지되고, 발전하고 있습니다.

< 3 > 초대교회에서 여제자들의 역할 : 고후 5:14-17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휘어잡습니다. 우리가 확신하기로는,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으니, 모든 사람이 죽은 셈입니다. [15]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은, 이제부터는,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들을 위하여 살아가도록 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을 위하여서 죽으셨다가 살아나신 그분을 위하여 살아가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16] 그러므로 이제부터 우리는 아무도 육신의 잣대로 알려 하지 않습니다. 전에는 우리가 육신의 잣대로 그리스도를 알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17]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

** 사람들이 세상을 사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많은 재물을 소유했느냐’, ‘얼마나 권세를 누리고 있느냐’, ‘얼마나 존경받고 사느냐’ 로 잣대를 삼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이 본문에서는 그런 잣대는 이제 소용이 없다, 다만 우리 죄인들을 위해 죽으셨다가 다시 사신 분, 예수님을 위해 사느냐 못 사느냐가 우리들의 잣대라고 말씀합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에게 매여 살고 있을 때에는 죽은 목숨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자비를 베푸셔서, 귀신들이 물러가고, 새 사람, 새 피조물이 되었을 때에, 그는 그 이후의 삶을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기로 작정했습니다.

초대교회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주님의 은총으로 구원을 받은 모든 성도들은 막달라 마리아의 본을 받아 삽니다.

<기도> 주 하나님, 오늘 막달라 마리아의 기념일을 맞아서 저희가 다시 마음에 다짐합니다. 저희의 옛 사람은 모두 죽었사오니, ‘새로 지어 주신 피조물’ 인 저희들은,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만 전념하게 하옵소서. 이것이 저희들의 삶의 잣대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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