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로마서 8장 28-30절 (새번역)
[28]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협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29]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신 사람들을 택하셔서, 자기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으니, 이것은 그 아들이 많은 형제 가운데서 맏아들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30]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이미 정하신 사람들을 부르시고, 또한 부르신 사람들을 의롭게 하시고, 의롭게 하신 사람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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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에도 운명론이 있는데, 오늘의 본문말씀이 기독교 운명론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잘 될 수 밖에 없다’ 가 기독교 운명론입니다.
잘 되는 과정은 네 단계가 있는데, 하나님의 복음을 듣게 된 것이 첫 단계입니다. 복음을 처음 듣는 사람은, 하나님을 어렴풋이라도 아는 사람이 되기 때문에 잘 된다는 말인데, 인간이 하나님을 알아야 얼마나 알겠습니까? 그래서 복음을 듣는 날이, 거꾸로,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알게 된 날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 한 번 보도록 합시다.
둘째 단계에서, 복음을 듣게 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맏아드님이신 예수님과 닮은 동생들이 되기 위해 마음에 안타까움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도 예수님 사셨던 모습으로 살아야지’ 하는 간절함이 있게 된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좋은 계획을 포기하기도 하지마는, 결국 이 안타까운 마음은 사그러졌다가도 다시 그들을 일으켜 종당에 ‘맏아들’의 형제, 곧 복음으로 구원 받는 사람들을 만들고야 만다는 말씀입니다.
세째 단계에서 복음으로 구원 받은 성도들은 복음을 위하여 헌신하는 사람들이 됩니다. 그들의 전반적인 삶의 목표가, 복음을 전파하는 일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실을 아시게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신뢰하시게 되고, 그의 모든 형편을 하나님께서 책임지십니다.
네째 단계에 이르면,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의 백성으로, 비록 이 땅에 살고 있어도, 하나님 나라에 시민권을 둔 사람이기 때문에, 복음을 위하여 목숨까지 바치게 되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 뒷일은 모두 하나님께서 책임지실 것입니다. 영원한 복락이 보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롭게 하셨다”는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가령, 사도 바울의 생애를 예로 들어봅시다.
바울이 된 사울은, 유대교의 교훈을 따라 하나님의 가장 충성된 종으로 살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그가 충성을 다하려고 하면 할수록 하나님을 등지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애써 복음의 씨를 심어, 싹을 틔워 놓으신 교회를 잔혹하게 짓밟았던 사울이었습니다.
교회는 예루살렘을 떠났고, 다메섹에 새 둥지를 틀었습니다. 사울은, 다메섹의 기독교인들을 일망타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로 믿었습니다. 이때에 사울에게 예수님께서는 직접 개입하시고, 그의 생애를 뒤집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일순간에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의 구원, 즉 복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유대인 사회에서 가장 유망했던 청년 사울은 이제 장래가 없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역사에서 가장 크게 쓰시려는 귀한 설계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의 출중한 성경 지식은 이제 복음을 설명하는 도구가 되었고, 율법에 따른 ‘고행’ 같은 자기수련은, 이제 구원의 은혜를 깊이 깨닫는 배경이 되었고, 행위로써가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 받는 복음을 깨닫게 된 전제가 되었습니다.
복음 전파자가 된 바울은, 줄곧 유대인들에게 쫓김을 당했습니다. 이것이 유대인들의 선민구원론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열게 해 주었고, 그에게는 가족이 없었지만, 도리어 그리스도 안에서 수많은 아들딸들을 만나게 되었고, 병약했고, 감옥에 갇히는 일을 수없이 당했지만, 이것이 오히려 복음을 전파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마침내 예수님이 처형 당했던 예루살렘, 자신의 과오로 스테반의 목숨을 빼앗았던 예루살렘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죽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더 큰 사명을 수행하게 하시고자, 로마로 그를 보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로마에 당도한 바울은 수감생활을 하며 온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선교를 펼칠 수가 있게 됩니다.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과정이 이처럼 분명한 데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들의 구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세속적 관점에서 보면, 악운도 있었고, 행운도 있었지만, 이 모든 것이 결국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게 결말지으시는 하나님의 섭리였음을 우리는 고백하게 됩니다. 그 결과로, 오늘 우리는 내일의 영원한 영광을 바라보게 된 것 아닙니까?
<기도> 주 하나님, 저희의 운명을 이렇게도 복되게 인도하여 주셨음을 감사드립니다. 베푸신 모든 은혜와, 장차에 약속된 영원한 영광이 저희들의 것임을 또한 감사드립니다. 이 감사로 저희의 나날이 이어져 가기를 소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