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새번역)
요한복음 3장 1-6, 8절. [1] 바리새파 사람 가운데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유대 사람의 한 지도자였다. [2] 이 사람이 밤에 예수께 와서 말하였다. … [3]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4] 니고데모가 예수께 말하였다. “사람이 늙었는데, 그가 어떻게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야 없지 않습니까?” [5]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6] 육에서 난 것은 육이오, 영에서 난 것은 영이다. … [8]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은 다 이와 같다.”
* * * *
맹자는 ‘성선설’을 제창했습니다. 인간은 본래 품성이 착하게 태어난다는 학설입니다. 그런데 사회적인 여건으로 악한 품성이 깃들 수 있는 것을 교육으로 바로잡아 나간다면, 본래의 착한 품성이 잘 자라나, 누구나 사회에 유익을 주는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반대로, ‘성악설’을 제창한 ‘순자’ 는, 인간은 본래 품성이 악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악한 욕망을 예절과 법률로 제어하지 않았다가는 세상은 싸움과 노략질로 가득차게 된다는 이론이었습니다.
철학자들의 대세가 공자나 맹자의 철학을 따르고 있었으므로, 성악설은 그리 빛을 보지 못했지만, 그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하여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서 전해지고 있습니다.
만약 기독교가 성선설과 성악설 가운데 어느 쪽에 속하느냐고 묻는 이가 있다면, 단연코 기독교는 성악설에 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우들을 향하여 “여러분도 전에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사람들입니다. … 불순종의 자식들 가운데서 작용하는 영을 따라 살았습니다. … 날 때부터 진노의 자식이었습니다”(엡 2:1-3) 라고 했습니다.
에베소 사람들 뿐이겠습니까? 아담의 모든 후손들이, 그냥 두었다가는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 밖에는 아무 것도 되지 않을 존재였던 것입니다. 소망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찾을 수 없는 죄악의 덩어리들이었습니다. ‘율법의 의로는 아무 흠이 없는 사람’ 임을 자처하던 사도 바울도 스스로를 평가하기를, “나는 죄인 중의 괴수라” 하였습니다.
니고데모를 칭하기를 ‘유대인의 지도자’라고 했습니다(요 3:1). 이 표현에서 보면, 오늘의 국회의원에 해당하는 ‘산헤드린’의 의원입니다. 학식에 있어서도 뛰어나고, 지도력이 있어서 사람들에게 돋보이던 니고데모를 향해서, 예수님께서 들려 주신 말씀이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가 없다” 하셨습니다.
이것은 니고데모를 향하여 주신 말씀이지만, 온 인류에게 전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사람들이 흔히 ‘아무개는 법 없이도 살 사람이다’ 고 말합니다. 그런 말 있을 수 없다는 말씀인 겁니다. 국회의원도, 법조인도, 교도관도, 도덕 교사도, 목사도, 신부도, ‘거듭나지 않으면 소망이 없다’는 선언인 것입니다.
에덴에서 추방된 아담과 하와가, 이 고해와 같은 세상 속으로 쫓겨나 날마다 땀 흘려 일하고, 죽을 기를 쓰고 해산을 하면서, 서로가 서로의 땀을 씻어 주며, 상대방의 눈동자 속에 담긴 우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왜 하나님을 배반했던가요? 배반의 대가가 이리도 모질군요?’ 이런 말없는 대화를 하고 있었으리라 봅니다.
순종의 자녀들로 사십시다. 이것은 물(회개)과 성령(하나님의 기운)으로만 가능합니다.
<기도> 주 하나님, 저희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옵소서. 십자가의 대속하심으로 오늘도 새 사람으로 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