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새번역)
사도행전 4장 32-37절. [32] 많은 신도가 다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서,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였다. [33] 사도들은 큰 능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사람들은 모두 큰 은혜를 받았다. [34] 그들 가운데는 가난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을 팔아서, 그 판 돈을 가져다가 [35]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고, 사도들은 각 사람에게 필요에 따라 나누어 주었다. [36] 키프로스 태생으로, 레위 사람이요, 사도들에게서 바나바 곧 ‘위로의 아들’ 이라는 뜻의 별명을 받은 요셉이, [37] 자기가 가지고 있는 밭을 팔아서, 그 돈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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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공생애 동안은,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에서는 어디서든지 ‘큰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잘 먹었다는 말이 아니라, 유무를 상통했다는 말입니다. 가령, 갈리리로부터 예루살렘에 이르는 마지막 40일의 여행 중에는 물경 120명이나 되는 무리들이 동행했는데, 그 숫자의 규모로 보아서는 치중(식량 등)의 해결이 그리 수월치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식량을 조달하기가 어려워서 어떻게 했다는 언급이 전혀 복음서에 없습니다. 그것은, 누군가가 그 조달책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짐작하기로는, 재정관리를 하던 가룟 유다가 있었다 해도, 가장 유력한 책임자들은 여제자들(눅 8:2-3) 이었을 것이고, 그들 주위에 상당수의 사람들이 이 일을 돕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때에, 가룟 유다는 자결했고, 모여든 군중은 날마다 수 천 명 씩 늘어나고 있던 초대교회로서는 거대한 무리들의 치중문제가 대단히 중대한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해결책은 먼 데서 나온 것이 아니고,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왔습니다.
사도들의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조달을 했기 때문입니다. ‘은혜의 말씀, 구원의 복음을 듣기 위해 모인 이들을 위한 식사가 문제 된다면, 내가 담당하겠다’ 는 사람들이 끝없이 이어져 나왔기 때문입니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수많은 분들이 식사를 담당했습니다. 그 가운데 오늘의 본문에 나오는 사람이 바나바였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예루살렘 공동체에 기대고 식사문제를 해결한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증언들, 그리고 사도들이 전해 주는 생명의 말씀, 이 은혜의 말씀을 두고 그냥 집으로 갈 수가 없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이룬 초대교회공동체를 흩을 수가 없었던 이들이 자발적으로 부담해서, 이 공동체는 유지되어 왔습니다.
지금도 세계 도처에는 수많은 공동체들이 있어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지역 주민들의 가난의 문제, 사회문제들의 개선을 위해 돕고 있습니다. 그들은 과연 엄청난 역사를 이루어 왔습니다. ‘사도들의 발 앞에’ 헌물을 바친 이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역사입니다.
그런데 그 뿐 만 아니라, 비록 각자 자기 집으로 흩어져서 사는 교회공동체라 할지라도, 그들이 힘찬 신앙공동체로서, 그들의 지역사회를 위해, 그들의 나라를 위해,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바나바의 후예’ 로서, 자발적으로 재정부담을 맡아 온,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역사가 있습니다.
이 눈에 보이지 않는 헌신과 공헌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는 날마다 왕성하게 세계 끝까지 확장되어 오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 주 하나님,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풍성하게 이루어져 감을 찬양 드립니다. 수많은 자발적 재정부담자들에 의해, 하나님의 복음과 하나님의 사랑이 땅끝까지 전파됨을 찬양 드립니다. 주님 다시 오시는 날까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왕성하게 이루어져 가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