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목자, 우리는 그분의 양떼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새번역)

{시편 23편 1-3절} 1)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 없어라. 2)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신다. 3) 나에게 다시 새 힘을 주시고,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바른 길로 나를 인도하신다. – – – – – – {베드로전서 2장 25절} 전에는, 여러분은 길 잃은 양과 같았으나, 이제는 여러분의 영혼의 목자이며 감독이신 그에게로 돌아왔습니다. _ _ _ _ _ _ {요한복음 10장 3하-4절} 3) … 그리고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서 이끌고 나간다. 4) 자기 양들을 다 불러낸 다음에, 그는 앞서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라간다. 양들이 목자의 목소리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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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1950년 여름 저는 제 형, 제 동생과 함께 삼형제가 평안남도 대동군 이천리에 피난 갔습니다. 유엔군사령관 맥아더 장군이 원자탄을 쓸지도 모른다는 제 아버지의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그곳은 아버지가 평양 성화신학교 교수로 전근 가기 이전에, 몇 년간 목회하던 곳이었습니다.

교회당은 차압 당해서, 주일마다 저희는 강가로 나가서 주일예배를 드렸습니다. 이천교회의 예배당은, 이천에 새로 설치된 인민군훈련소의 숙소가 부족하다 하여, 인민군이 강탈하여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예배를 위해 모이던 장소는 대동강변 모래톱이었습니다. 강가 모래 둔덕에 수십 명이 정답게 둘러앉아, 전도사님이 인도하는 예배에서 찬송을 불렀습니다.

‘믿음이 이기네, 믿음이 이기네, 주 예수를 믿음이 온 세상 이기네.’ (찬송가 397장 후렴) 이 찬송 소리가 대동강 건너편 고방산에 메아리져 울려 퍼지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양무리들의 찬송 소리’ 는 비록 애처롭기 그지 없었어도, 하나님께서 그 어느 곳의 찬송보다도 귀기울여 들어 주시던 찬송 소리였을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 2 ) 2005년 저는 조기은퇴를 하고, 당분간 예수원에 가서 기도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낮에는 작업을 하는 것이 저의 일과였습니다. 그런데 작업장으로 찾아온 손님이 계셨습니다. 손님의 인사가 “저희는 북한에서 온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저도 즉각적으로 “저도 북한에서 온 사람입니다” 했습니다.

그러자 반가워하면서 “아니, 언제 왔습네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웃으면서, “탈북민이시군요. 저는 1.4 후퇴 때, 부모를 따라 피난 나왔습니다” 했습니다. 너무도 반가워서, 그 분들에게 북한의 교회 이야기를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들은 내외였는데, 부인은 북한 보위부 장교로 있었습니다. 그래서 알려지지 않은 비사들을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한 때, 지하 깊은 곳에 기도실을 파고 들어가 기도생활을 하던 사람이, 홍수 때문에 물이 차 올라와, 하는 수 없이 바깥으로 나온 사람이 있었다고 전해 주었습니다.

아마도 보아하니, 땅 속에서 그가 서원기도를 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목숨을 걸고, 통일의 날이 오기를 빌었든지, 아니면, 김씨 일가의 회개를 빌고 있었든지 했을 것 같습니다.

( 3 ) 하나님께서 역사를 마감하시는 날, 대한민국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면, 많은 배심원들 자리에 북한 땅에서 믿음을 지키던 사람들이 앉았을 것이라고 연상됩니다. ‘70년 동안 우리가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북한 땅에서 갖은 고난을 당하고 있을 때, 당신은 자유 대한민국에 가서 뭘 했소?’ 라고 저를 향해 묻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하나님의 양무리’를 생각할 때면, 제게는 이렇게 북한 땅에 있는 양무리들이 먼저 생각나는 것이 제 평생의 본능입니다.

<기도> 주 하나님, 말로는 하나님께 속한 동일한 양무리라 하면서도, 실제로는 순종의 양으로 살지 못하는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목자되신 하나님의 염려, 하나님의 소망을 저의 염려와 소망으로 삼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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