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새번역)
누가복음 8장 1-3절. [1] 그 뒤에 예수께서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며 그 기쁜 소식을 전하셨다. 열두 제자가 예수와 동행하였다. [2] 그리고 악령과 질병에서 고침을 받은 몇몇 여자들도 동행하였는데, 일곱 귀신이 떨어져 나간 막달라라고 하는 마리아와 [3] 헤롯의 청지기인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그 밖에 여러 다른 여자들이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의 일행을 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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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형제, 6남 1녀들이, 첫째부터 다섯째까지가 모두 남자 형제였습니다. 그래서 어려서 소꿉놀이를 몰랐고, 다만 목사인 아버지가 예배당에서 엄숙하게 결혼예식을 종종 집례하는 것을 구경했던지라, ‘결혼식 놀이’를 한 기억이 납니다.
저는 둘째였기 때문에, 여섯 살 난 제 형이 신랑 역을 맡으면, 네 살 난 저는 도리 없이 신부 역을 맡아야 해서, 흰 보자기로 머리를 씌우고, 왼팔에는 방비짜루를 거꾸로 들고서 얌전히 서 있으라 했습니다. 그 역할이 싫어서, 저는 ‘결혼식 놀이’를 하자면, 슬며시 뒤빼곤 했습니다. 여자 역할 자체가, 뭔가 저의 체면을 깎는 것으로 인식했던 모양입니다.
그후 20여 년이 지나, 첫 직장에 취직할 때에, 같은 대졸자인 한 여성과 동시에 입사했습니다. 그런데 봉급을 균일하게 지급했습니다. 저는 남자로서, 근무 내용이 여성에 비해 훨씬 앞선다고 자만했기 때문에, 마땅히 차등을 두어 지급해야 한다고 불평했습니다. 제가 결혼해서 딸을 키우게 되기까지는 여성친화적 사고가 전혀 개발되지 못했습니다.
다시 35년이 지나, 주교가 되고 보니, 교구 안에 저와 신학대학원에서 함께 공부하던 여성이 여전히 전도사로 시무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성차별은 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회법에도 여성서품은 안된다는 문구가 없었고, 신학대학원에 입학을 허가한 것 자체가 모순이 되는 것을 개탄했습니다. 그래서 신학대학원을 마친지 20년이 되는 그 여성에게 사제서품을 했습니다.
한국성공회로서는 최초의 여성서품이라고 사람들이 ‘역사적인 일’ 이라고 평가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저는 그런 말 듣고 싶어서 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여성에게도 같이 서품하는 것이 옳다고 보았기 때문에 그렇게 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차별이 없으신 분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여성의 명단이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 요안나, 수산나, 이 세 사람이, 열 두 제자와 동급의 제자로 취급되었는지 분명치 않습니다. 다만, 그들에게도 역할이 있었고,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습니다. 대부분의 남자 제자가 다 도망쳤던 날, 십자가 처형장에까지 따라갔던 이들이었습니다.
남성들이 예수님께 꾸지람을 들은 일이, 복음서에 허다한 데에 비해서, 여성들이 예수님께 칭찬을 들은 일은 오히려 많은 것을 봅니다. 한 여인은 그의 믿음으로 칭찬을 받았고(막 5:23-24), 이방 여인은 예수님께 보인 진지한 태도 때문에 칭찬을 받았으며(막 7:24 -30), 한 과부는 헌금의 본을 보였기 때문에 칭찬을 받았습니다(막 12:41-44).
예수님께서는 여성에 대한 차별과, 특별히 차별적 규정에 대해서 반대의사를 가지고 있었지만, 메시아 사역이 너무도 급하고 소중했기 때문에, 이 제도적 문제를 뛰어넘으셨습니다. 가령, 극동아시아의 선교 문제에 대해서 아무 말씀 없이 떠나셨듯이, 여성성직 문제에 대해서도 아무 말씀 없이 가셨을 뿐입니다.
<기도> 주 하나님, 성을 인간이 선택할 수 없이 태어나, 성으로 차별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 줄 저희가 확신합니다. 더 이상 어리석은 자리에서 헤매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