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새번역)
사도행전 16장 22-27절. [22] … 그러자 치안관들은 바울과 실라의 옷을 찢어 벗기고, 그들을 매로 치라고 명령하였다. [23] 그래서 이 명령을 받은 부하들이 그들에게 매질을 많이 한 뒤에, 감옥에 가두고, 그들을 단단히 지키라고 명령하였다. [24] 간수는 이런 명령을 받고, 그들을 깊은 감방에 가두고서, 그들의 발에 차꼬를 단단히 채웠다. [25] 한밤쯤 되어서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죄수들이 듣고 있었다. [26] 그 때에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서, 감옥의 터전이 흔들렸다. 그리고 곧 문이 모두 열리고, 모든 죄수의 수갑이며 차꼬가 풀렸다. [27] 간수가 잠에서 깨어서,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는, 죄수들이 달아난 줄로 알고, 검을 빼어서 자결하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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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감방’(24절) 이라는 말을 보면, 99.99% 도주할 수가 없는, 고대 중동지방의 지하감방이 생각납니다. 출입구는 위쪽으로 나 있는 구멍 하나 밖에는 없는 감방이 있습니다. 거기에 죄수의 팔과 어깨를 묶어서 달아내리면, 아래에서 근무하는 간수가 끈을 풀어 주기 전에는 꼼짝 못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깊은 감방에 차꼬까지 채워져 있었다고 하니까, 소망이 전혀 없는 장소에 내려가 있는 상태입니다. 더구나 매를 몹시 맞아서, 괴롭기 한이 없습니다. 캄캄한 방에 시간은 한밤 중이었습니다.
절망의 상태에 있던 바울과 실라가 노래를 시작했습니다. 제 짐작으로는 히브리 곡조로 부르는 시편송이었을 것 같습니다. 23편 ‘주는 나의 목자시니’, 아니면 130편 ‘내가 깊은 곳에서’, 150 개의 시편들 가운데 무슨 시편이든 그들에게 위로가 되지 않았겠습니까?
한밤 중에 잠을 깨우는 두 사도의 두엣은 다른 죄수들을 깨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도 오히려 이 낯선 이들의 노래가 위로가 되었던지 조용히 듣고 있었습니다.
6.25전쟁 당시 저희는 평양 기림리 고녹골에 살았습니다. 저희 집에는, 폐교된 신학교 학생들이 인민군에 끌려 가지 않으려고 7,8 명이 와서 숨어 지냈습니다. 아버지가 시작한 프레스공장에서 밥벌이하면서 노동자로 숨어 지내던 그들은 집안에 또 하나의 비밀실을 마련하고 거기 숨어서 지냈습니다.
그들이 매일 부르던 찬송이 있었습니다. 찬송가 457장입니다. “주의 곁에 있을 때, 맘이 든든하오니, 주여, 나를 생전에 인도하여 주소서” 찬송소리가 바깥에 들릴까봐 조심스럽게 부르는 데도, 하나님을 향한 호소였으므로 때로는 밖에서도 똑똑하게 들렸습니다. 특히 후렴 부분, “주여, 주여, 나를 인도하소서” 할 때면 조용히 부를 수가 없었습니다.
그 분들이 지금은 대부분 하늘나라에 가셨을 것이라고 봅니다. 저 하늘나라에서, 똑같은 ‘깊은 곳에서 한밤중의 찬양’ 을 부르던 이들이, 우렁찬 찬미소리로 옛 추억을 담아 찬양을 부르고 있지 않을까요?
바울과 실라가 부른 한밤중의 찬송은, 그들이 빌립보 감옥에 갇혀 있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세상은 우리의 찬송을 듣지 못해도,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찬송을 부릅시다. 하나님의 힘찬 박수소리가 지진으로, 부흥으로, 개벽으로 나타나는 찬송을 부릅시다.
<기도> 주 하나님, 저희의 힘찬 찬양으로 암흑이 가득찬 세상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