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새번역)
시편 6편 4-9절. [4] 돌아와 주십시오. 주님, 내 생명을 건져 주십시오. 주님의 자비로우심으로 나를 구원하여 주십시오. [5] 죽어서는, 아무도 주님을 찬양하지 못합니다. 스올에서, 누가 주님께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6] 나는 탄식만 하다가 지치고 말았습니다. 밤마다 짓는 눈물로 침상을 띄우며, 내 잠자리를 적십니다. [7] 사무친 울화로 내 눈은 시력까지 흐려지고, 대적들 등쌀에 하도 울어서 눈이 침침합니다. [8] 악한 일을 하는 자들아, 모두 다 내게서 물러가거라. 주님께서 내 울부짖는 소리를 들어 주셨다. [9] 주님께서 내 탄원을 들어 주셨다. 주님께서 내 기도를 받아 주셨다. [10] 내 원수가 모두 수치를 당하고, 벌벌 떠는구나. 낙담하며, 황급히 물러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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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쟝 다르끄 (1412 – 1431, 프랑스) 쟝 다르끄는 ‘영적 환상을 보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프랑스 돔레미의 영세농민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가 열네 살 되던 해, 옛 성인 몇 분이 쟝 앞에 나타나, ‘백년전쟁’ (1337-1453년, 영국 프랑스 사이에서 지속됨) 으로 지칠대로 지쳐 있는 프랑스 국민을 구출하라는 당부를 받았습니다.
쟝은 이 일을 그리 유념치 않았으나, 그녀의 예언이 하나씩 적중하기 시작하자, 그의 신념이 강렬해졌습니다. 이윽고 오를레앙 전투에서 군을 지휘하고 있던 도팽(후일에 샤를 VII세가 됨)을 만나, 쟝은 군사들을 이끌고, 진두지휘하여 연전연승의 전과를 올립니다. 이윽고 도팽이 왕 즉위를 하던 날, 쟝은 최고수훈자로 왕의 곁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부르군디 전투에서 패하고, 쟝은 영국 군에게 사로잡혀, 영국법정에 서게 됩니다. 그는 ‘마녀’라는 선고를 받아, 19세에 화형을 당했습니다. 25년이 지나, 로마 교황은 그가 무죄라고 선언했고, 프랑스는 그를 국가최고유공자 두 사람 중 하나로 칭했습니다.
{ 2 } 아폴로 키붸불라야 ( ? – 1933, 사제, 복음전도자, 중앙아프리카) 아폴로 키붸불라야 사제가 기독교를 처음 접한 것은 1884년이었습니다. 그는 같은 해에, 세례를 받고, 우간다 교회에서 교회학교 교사로 일했습니다. 그후 벨기에령 콩고의 보가 지방으로 가서 전도자와 교리교사로 일하다가, 1903년에 사제가 되었습니다.
그는 셀 수 없이 많은 교회를 설립했고, 무수한 사람들에게 신앙교육을 베풀었습니다. 그는 온 생애를 정글로 들어가서, 교회교사들을 훈련하고, 학교를 설립하여 운영하는 등, 사람들에게 복음 전하는 일로 보냈습니다. 그의 최고의 공헌은 마가복음을 피그미족 언어로 번역한 것이었습니다.
그가 1933년에 작고한 후, 영국성공회 해외선교부(CMS)는 영국 선교사들을 여러 명 파견하여, 그가 남기고 간 성경번역사업을 완성케 했습니다. 피그미족은 키붸불라야 사제의 은덕으로 복음을 듣게 되었고, 문맹을 면하여 교육을 받게 되었습니다.
** 오늘 세계교회는 위의 두 분을 기념합니다. 쟝은 14, 15세기에, 백년전쟁으로 말미암아 시달리던 프랑스 국민을 위하여 하나님의 일을 했던 이였고, 아폴로 키붸불라야 사제는 아프리카 밀림에 사는 무지몽매한 이들을 복음으로 깨우치던 성직자였습니다.
전장에서 죽어가던 병사들과 함께 목숨을 바친 쟝도, 또 밀림 속에서 맹수와 병마의 위협을 무릅쓰고 아프리카 토인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온 생애를 바친 키붸불라야 사제도, 하나님의 충성된 종들로 살던 이들이었습니다.
<기도> 주 하나님, 전쟁에 시달리던 백성을 위하여, 또 정글 속의 여러 부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기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흠모하며 살도록 인도하던 두 분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도 이들의 믿음을 본받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