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새번역)
고린도전서 11장 23-26절. [23] 내가 여러분에게 전해 준 것은 주님으로부터 전해 받은 것입니다.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빵을 들어서 [24] 감사를 드리신 다음에, 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여라.” [25] 식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시고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다. 너희가 마실 때마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여라.” [26]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님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선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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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내 몸이다” 하신 떡과, “이것은 내 피다” 하신 포도주는, 말씀 그대로, 주님의 몸과 피가 되는 것이냐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이 문제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가 있습니다. 어떤 교단은, 성찬의 기도를 드리는 동안에, 떡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살과, 예수님의 피로 변한다고 말합니다.
또 다른 교단은, 성찬식에서 떡과 포도주는 물체가 그대로 있지만, 마치 스폰지에 물이 스며들듯, 떡과 포도주에 예수님의 찢기신 몸과 흘리신 보혈이 깃들게 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교단은, 위의 두 가지 생각이 뭔가 합리성이 없는 것 같다며, 제3의 의견을 말합니다. 즉, 떡과 포도주가, 물체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지만, 명목이 달라지는 것이라고 보는 견해입니다. 떡과 포도주에 담긴 의미가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찢기신 몸과 흘리신 보혈의 ‘역할’을 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해석들에 동의하지 못하는 어떤 교단은, 다음과 같은 해석을 내어놓았습니다. 성만찬 때에, 축복하는 물체에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기념하는 예수님의 수난하신 몸과 보혈을 상징하기 위해 떡과 포도주를 사용하는 것이라는 견해입니다.
이와 같은 논쟁은, 특별히 종교개혁기에 치열했습니다마는, 지금껏 합의된 결론은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단의 공식적인 해석이 그 교단에 속하고 있는 신도 전원의 생각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논쟁은 그쳤고, 똑 같은 문구(고전 11장 23-26절) 의 성만찬 예문으로 성찬식을 거행하는 것으로 일치를 이루고 있을 뿐입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이를 행하여” 를 해석하는 문제에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마지막 만찬을 마치시고, 게쎄마네로 가셨다가 체포되어, 십자가에 오르셨듯이, 성찬식을 행한 사람들은 복음 증거를 위한 출발의 예식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행동주의자’가 있고, “이를 행하여” 는 다만 예식을 의미한다고 보는 ‘예식주의자’의 해석이 있습니다.
이것 역시 끝나지 않은 논쟁의 주제입니다. 다만 성찬 참가자의 신앙에 의존한다는 것으로 결론이 난 듯합니다. 그래서 성만찬 자리에서 논쟁할 것 없이, 복음 전파의 현장에서 믿음대로 실천할 것을 말없이 지시하는 듯합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자주 성찬에 참예하고 계십니까? 주님의 성찬의 은혜를 늘 사모하면서, 성체성사의 은혜 안에 늘 사시기를 권유합니다. 오늘, 성찬례 제정을 기념하는 날에 우리들의 성사생활을 반성해 보십시다.
<기도> 주 하나님, 예수님의 엄숙한 성만찬을 가지고, 교회가 어리석은 논쟁을 하지 않게 하소서. 온 몸으로 저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일을 기억하는 것으로, 마음을 다하여 성찬의 은혜를 사모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