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고린도후서 5장 14-20절 (새번역)
[14]… 우리가 확신하기로는,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으니, 모든 사람이 죽은 셈입니다. [15]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은, … 자기들을 위하여서 죽으셨다가 살아나신 그분을 위하여 살아가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 [17]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 [18] …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내세우셔서, 우리를 자기와 화해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해의 직분을 맡겨 주셨습니다. … [20]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입니다. …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리하여 간청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화해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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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렸을 때에, ‘우리의 맹세’ 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아들 딸, 죽음으로 나라를 지킨다” 이렇게 시작하는 ‘맹세’를 학교의 조회에서, 관청이 주관하는 모임에서 함께 외쳤습니다. 엄청난 선언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기의 정체성을 바로 알고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나이 70, 80이 되도록 자신의 삶의 목표가 어디 있는지 분명치 않은 채로, 평생을 살고 말아서, 늙어 후회를 해도 돌이킬 수 없는 낙심에 빠지고 맙니다.
사도 바울은 이 점에서, 민족을 초월하고 시대를 초월하는 ‘인간의 정체성’ 을 말해 주었습니다. 즉,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화해한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가 세상을 사는 목적이, 우리의 이웃을 하나님과 화해하도록 인도하는 화해자로 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 자신부터, 율법주의자의 그릇된 삶을 벗어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전하면서, 화해자로 그의 생애를 바쳤습니다.
그리고 그가 만난 모든 사람들, 유대인이나, 투르키예인이나, 그리스인이나, 로마인이나, 할 것 없이, 남자나 여자나, 젊은이나, 늙은이나, 복음으로 하나님과 화해하게 하고, 그들의 남은 생을, 그들이 만나는 모든 이웃을 하나님과 화해하도록 초대했습니다.
빌립보 감옥의 간수를 초대했고(행 16:31), 로마 감옥에 수감생활을 하던 오네시모를 초대했고 (빌레몬서), 심지어 바울 자신을 심문하던 아그립바왕을 화해자가 되라고 초대하고 있었습니다(행 26:29).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과의 화해로 초대했습니다.
제가 만났던 베트남의 토안하이라는 사람은, 집에서 빌립보서를 읽던 중에, 2장 17-18절에, “그리고 여러분의 믿음의 제사와 예배에 나의 피를 붓는 일이 있을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여러분 모두와 함께 기뻐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이와같이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십시오” 를 읽으며 도저히 혼자 기쁨을 가눌 수가 없어, 거리로 뛰쳐 나갔습니다.
베트남은 거리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은 어쩔 줄을 몰라, 만나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전하면서, 기쁨의 하나님을 전했습니다. 그 날로 경찰에 연행되었고, 투옥을 당했습니다. 감옥 속에서도, 오히려 갇힌 공간 안에 사람들을 모아 준 것을 기뻐했습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함께 찬양을 불렀습니다.
<기도> 주 하나님, 저희의 정체성이 ‘화해자’임을 매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정체성을 분명히 깨닫고 살게 해 주시옵소서. 이 사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시며, 이것이 저희의 목표요 보람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