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마태복음 6장 1-6절 (새번역)
[1] 너희는 남에게 보이려고 의로운 일을 사람들 앞에서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 [2] 그러므로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그렇게 하듯이, 네 앞에 나팔을 불지 말아라. … [3] 너는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 네 자선 행위를 숨겨두어라. 그리하면, 남모르게 숨어서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5]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하지 말아라. 그들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 [6] 너는 기도할 때에,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서, 숨어서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리하면 숨어서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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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연기와 사랑은 감출 수가 없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돈 푼 깨나 가지고 있으면, 대부분 티를 내어, 남에게 돈 좀 있음을 알리게 마련이라는 것, 담배를 피는 사람은 남에게 숨길 수가 없다는 사실, 그리고 누군가를 연모하게 되면, 은연 중 그 사랑이 드러나게 됨을 한 데 묶어서 만든 재미있는 속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속담을 모아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제발 이것 만은 좀 남에게 알리려 하지 말아 달라고 주의를 주신 말씀인데, 의로운 일(1절), 자선(2-4절), 기도(5절), 이 세 가지는 남의 눈을 피해서 하라시며, 이를 한 데 모아 말씀하셨습니다.
1974년에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기자 수백 명이 가담한 ‘자유언론투쟁위원회’가 군사정부를 상대로 벌인 강력한 투쟁이 있었습니다. 그때에 이 두 신문사는 군사정권 하에서 신문을 죽일 수가 없다면서, 투쟁을 접기를 바랐습니다. 신문을 제작하는 공무국은 기자들이 점령했으므로 신문은 나왔지만, 광고란이 텅 빈 신문이 날마다 발행되었습니다.
일이 그렇게 진행되다가는 기자들이 모두 포기하고 말겠다고 염려한 국민들이 자잘한 몇 행 짜리 광고를 게재했습니다. 참으로 이 무수한 의로운 사람들의 독려는, 이 나라에 수많은 의인들이 있다는 신념을 우리들에게 주었습니다.
4.19혁명, 6.10민주선언의 이름으로 ‘의인’ 행세를 하고 있는 정치인들이 꽤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 말고도, 그 날에 거리로 뛰쳐나와, 청와대 앞에서 흉탄에 맞은 사람들, 최루탄 가스가 가득한 거리에서 늠름하게 데모군중들을 지휘하던 이들이 수십 배 수백 배 있었다는 사실을 저는 압니다. 대부분은 숨어서 의롭던 세력입니다.
2절에 ‘위선자’(휘포그리테스) 라는 희랍어는, 희랍 사람들이 연극을 할 때에 ‘누구의 배역을 연기하는 사람’ 이라는 말입니다. 옳은 일, 자선, 기도를 하면서, 자기 마음에서 우러나서 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연기로 한다는 말씀입니다.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그 힘든 연기를 왜 그렇게 잘 하는지요.
“숨어서 보시는 분”, 곧 하나님께서 나중에 상을 주실 것이라고 귀띔을 주셨습니다. 하나님마저 못 보시도록 속일 수는 없으니, 의로운 삶, 선행, 기도생활은 사람들 눈에는 깨끗이 숨겨서 참 기쁨을 누리며 살아라, 이것이 예수님의 권고이셨습니다.
집 식구들이 많아서 ‘골방’이 없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 분은 화장실이 자신의 기도실이었다고 말했습니다. 화장실에 혼자 앉아, 많이 울고, 많이 하나님께 아뢰고, 많이 회개했다던 옛날의 그 교우가 생각납니다.
<기도> 주 하나님, 하나님과 만나는 밀실을 사랑하게 하옵소서. 하나님만 아시는 많은 비밀스런 의로운 일, 자비로운 일을 쌓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