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세례 요한 탄생 축일 (새번역)
요한복음 3장 26-30절. [26] 요한의 제자들이 요한에게 와서 말하였다. “라삐님, 보십시오. 요단 강 건너편에서 선생님과 함께 계시던 분 곧 선생님께서 증언하신 그분이 세례를 주고 있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분에게로 모여듭니다.” [27] 요한이 대답하였다. “하늘이 주시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28] 너희야말로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고, 그분보다 앞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다’ 한 말을 증언할 사람들이다. [29] 신부를 차지하는 사람은 신랑이다. 신랑의 친구는 신랑이 오는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신랑의 음성을 들으면 크게 기뻐한다. 나는 이런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30] 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
* * * *
세상에서 흔히 보는 나쁜 인간성 하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전임자가 후임자의 잘됨을 그리 기뻐하지 않는 일입니다. 가령, 전임대통령이 후임대통령의 훌륭한 통치를, 선임지휘자가 후임지휘자의 훌륭한 연주를, 선임부대장이 후임부대장의 훌륭한 통솔력을 칭찬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이 통례이지 않습니까?
오히려 후임자의 잘됨을 배가 아파하고, 헐뜯을 데를 찾아내어, 비난을 일삼는 것이 인간 본능이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어느 교회 담임목사는 아주 훌륭하게 목회를 하던 이인데, 일찍 명예퇴직을 하고, 후임목사에게 완벽하게 인계를 한 후, 떠났습니다. 대단히 훌륭한 이입니다. 교단에 따라서, 인사권을 윗 사람이 혼자서 행사하는 교단이 있습니다. 지금껏 열심히 목회하던 이를 떠나라고 하면, 순순히 복종하고 떠날 사람이 그리 흔치 않습니다.
“그(예수님)는 흥하셔야 하고, 나(세례 요한)는 쇠하여야 한다” (30절) 고 하는 세례 요한의 증언은, 진정 마음 속에서 우러나온 말이었습니다. 통상, 섭섭하고 쓰라린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선임자로서 후임자에게 인사치례로 이런 말은 할 수 있겠지만, 마음 속에서 우러나서 이렇게 말할 사람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세상이 오늘보다 내일이 더 발전해야 한다고 믿는다면, 지금껏 제가 사랑하는 마음으로 섬기던 직장을 떠나면서, 전임자였던 제가 후임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격려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더구나 세례 요한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주님의 길을 예비할 자”로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그런 사람이, 만약 인간적 질투심에 싸여, 누군가(예수님)의 세례에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에, 보통 사람 같으면 심사가 비틀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성령의 이끄심을 받아, 큰 소리로 선언합니다. “이제 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 이로써 영적 리더쉽의 승계는 순탄히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영적 리더쉽의 최고봉에는 성령님 한 분이 계십니다. 우리는 모두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르면서, ‘나’는 겸손히, 내일의 새로운 인물을 통하여 역사하실 성령님 홀로 주장하시도록, 리더쉽의 흐름에 마땅히 순복해야 합니다.
<기도> 주 하나님, 하나님의 영적 영도력 앞에, 인간인 저희들이 순복하게 하옵소서. 인간인 저희가, 비록 작은 부분의 영광일지라도 하나님의 것을 가로채려 하지 말게 하옵소서. 하나님 만이 홀로 영광을 받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