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누가복음 22장 31-34절 (새번역)
[31] “시몬아, 시몬아, 보아라. 사탄이 밀처럼 너희를 체질하려고 너희를 손아귀에 넣기를 요구하였다. [32] 그러나 나는 네 믿음이 꺾이지 않도록, 너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네가 다시 돌아올 때에는, 네 형제를 굳세게 하여라.” [33] 베드로가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나는 감옥에도, 죽는 자리에도, 주님과 함께 갈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34]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한다. 오늘 닭이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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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날자 세는 법은, 자정을 기점으로 하루가 끝나고 새 날이 시작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하시던 당시의 유대인들에게는, 해가 지면서 새 날이 시작되기 때문에, 저녁 잡숫던 자리에서 “오늘” 닭이 울기 전에 베드로가 세 번 주님을 모른다고 할 것이라 하신 예언은 맞는 말씀입니다.
베드로가 저처럼 난청이었던 사람입니까? 왜 예수님께서 이런 심각한 말씀을 하실 때에, 정신 차리고 듣지 않습니까? 그 누구도 아닌, 베드로 자기 자신의 변절을 말씀하고 계신데요.
베드로가 펄쩍 뛸만한 말씀을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일언반구 대응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혹시라도 베드로의 심중에 가룟 유다 처럼 무슨 흉계라도 꾸미고 있었단 말씀입니까?
아닙니다. 베드로가, 맞대응을 할 만한 말씀이 아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스승 예수님을 부인하다니요? 그런, 있을 수도 없는 일을 말씀이라고 하고 계시니까, 너무나 어처구니 없어서 한 마디 대응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날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변절을 예언하신지 대, 여섯 시간이 지난 때에, 베드로는 세 번 씩이나 예수님을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아, 아, 시몬 베드로! 당신은 왜 그리도 약한 인간이란 말이요?
우리는 나약한 인간 베드로를 탓합니다. 진정 지탄을 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베드로의 일 뿐이겠습니까? 인간에게는, 자신에게 위험이 닥쳐 오는 순간에, 살 길을 찾는 본능이 발휘됩니다. 즉각적으로, 반사적으로, 주저 없이 살 길을 찾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님께 변절하면서 우리들의 삶을 이어왔지 않습니까?
오, 예수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를 아직 살려 두고 계셨군요. 그 무수히 반복되던 변절의 순간에도 조용히 보고만 계셨군요. “그러나 나는 네 믿음이 꺾이지 않도록, 너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네가 다시 돌아올 때에는, 네 형제를 굳세게 하여라” (본문 32절) 이렇게 안타까이 부탁하시면서..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믿음이 꺾이지 않도록 기도하셨다니요? 누구에게? 아버지 하나님께, 성령 하나님께 비셨겠지요. 그래도, 우리들의 믿음이 꺾이지 않고, 살아 있도록 도와 달라고 빌고 계시겠지요.
<기도> 주 하나님, 무수히 반복되는 저희의 변절의 순간에도, 참으시고, 지켜 보시며, 저희의 돌이킴을 위하여 빌고 계심을, 저희의 믿음이 꺾이지 않게 빌고 계심을, 감사하나이다. 주 하나님께서 승리하시옵소서. 마침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