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요한복음 20장 25-29절 (새번역) *사도 도마의 기념일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보았소” 하고 말하였으나, 도마는 그들에게 “나는 내 눈으로 그의 손에 있는 못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어 보고, 또 내 손을 그의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서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26]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도마도 함께 있었다. 문이 잠겨 있었으나, 예수께서 와서 … [27] … 도마에게 말씀하셨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서 내 손을 만져 보고,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래서 의심을 떨쳐버리고 믿음을 가져라.” [28] 도마가 예수께 대답하기를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하니, [29] 예수께서 도마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았기 때문에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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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가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 보고서야,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믿습니다. 그 때에 그가 하는 말이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이라고 외칩니다. 도마는 진정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신 것을 맨 먼저 고백했던 것입니다.
도마는 믿음의 사람이라기보다, 이성이 지배하는 사람이라는 선입견을 우리가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그런 인상을 받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의 본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도마는 이성과 믿음을 균형있게 갖춘 건전한 신앙인이었던 것을 우리가 발견합니다.
우리들의 신앙 내용에는, 이성의 도움을 받아 깨닫게 되는 진리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 가지고는 우리들의 모든 신앙 내용이 설명되어질 수 없습니다. 이성으로 증거될 수 없어도, 우리들의 믿음으로 입증되는 내용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가령, 하나님의 존재, 죄의 인식, 십자가로 이루는 죄의 용서, 부활, 재림, 심판, 영생, 이 모든 명제들을 설명하려면, 난해하기 그지없는 하나님, 창조, 죄, 사죄, 부활, 영원, 등등의 추상적 개념에서부터 우리들의 추론을 시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전적 교회들은, 감사성찬례 (성찬식) 에서 늘, 기독교의 ‘신비로운 신앙’ (또는 ‘신앙의 신비’)를 고백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고, 그리스도는 (죽은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고, 그리스도는 (장차 세상에) 다시 오십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이것이 인간 이성으로 증명이 가능한 명제들입니까? 전혀 불가합니다.
하지만 우리 믿는 무리들이 모일 때면, 의심 없이, 한결 같이, 한 목소리로 이 신비로운 신앙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바깥의 사람들은 이것을 ‘집단 최면’, 또는 ‘군중심리’ 라고 경시하지만, 교회로서는 ‘신앙적 합리의 보편성’ 으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 1623-1662)은 말하기를, “인간의 이성이 궁극에 가서는, 이성을 초월하는 진리가 무한히 많다는 것을 이윽고 깨닫게 된다” 고 했습니다. 이성이 더 어쩌지 못하는 논리는, 신앙의 논리로써 설명된다는 뜻입니다.
교회는 지난 2천 년 동안 수많은 이론가 신학자들을 배출했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존 칼빈, 칼 바르트 같은 불가사의한 이론신학자들을 통하여 기독교 신앙은 설명되었습니다. 동시에 아시시의 프란시스(1182-1226)와 같은 금욕과 영성수련을 강조한 영적 지도자들도 공존했기에, 교회가 조화와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기도> 주 하나님, 저희에게 진리를 탐구하는 이성과, 영적인 분별력을 함께 부여하셨음을 감사 드립니다. 이 두 가지의 기능으로 저희가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 사랑하게 하시고, 이성을 초월하여 계신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