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풀처럼, 들꽃처럼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마가복음 5장 22…42절 (새번역)

[22] 회당장 가운데서 야이로라고 하는 사람이 찾아와서 예수를 뵙고, 그 발 아래에 엎드려서 [23] 간곡히 청하였다.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 오셔서, 그 아이에게 손을 얹어 고쳐 주시고, 살려 주십시오.” [24] 그래서 예수께서 그와 함께 가셨다. … [25] 그런데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아온 여자가 있었다. …

[27] 이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서 뒤에서 무리 가운데로 끼여 들어와서는, 예수의 옷에 손을 대었다. … [29] 그래서 곧 출혈의 근원이 마르니, 그 여자는 몸이 나은 것을 느꼈다. [30] 예수께서는 곧 자기에게서 능력이 나간 것을 몸으로 느끼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아서서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셨다. …

[34] 그러자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안심하고 가거라. 그리고 이 병에서 벗어나서 건강하여라.” [35] 예수께서 말씀을 계속하고 계시는데,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말하였다. “따님이 죽었습니다. 이제 선생님을 더 괴롭혀서 무엇하겠습니까?”

[36] 예수께서 이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서, 회당장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 [38] 그들이 회당장의 집에 이르렀다. 예수께서 사람들이 울며 통곡하며 떠드는 것을 보시고, [39] 들어가셔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떠들며 울고 있느냐? 그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40] 그들은 예수를 비웃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을 다 내보내신 뒤에, 아이의 부모와 일행을 데리고 아이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셨다. [41]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말씀하셨다. “달리다굼!” (이는 번역하면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한다. 일어나거라” 하는 말이다.) [42] 그러자 소녀는 곧 일어나서 걸어다녔다. 소녀의 나이는 열두 살이었다. 사람들은 크게 놀랐다.

* * * *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 그의 병을 고쳤습니다. 혈루증 환자는 ‘부정한 사람’ 으로 취급 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인 곳에 가려면, ‘나는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부정한 사람이요’ 이렇게 소리를 질러서, 성한 사람들이 경계를 할 수 있게 해 줘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럴 겨를도 없었습니다. 너무도 사람들이 미어터지게 많이 달려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여인 말고도, 비슷한 애로를 가지고 예수님께 접근한 사람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다만 복음서들은 그들의 취재선에 닿은 사람, 혈루증 환자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질문은 “So, what?” 그래서 그 여자가 병이 나아서 뭘 했다는 말이냐고 묻습니다.

또 한 사람이 복음서 기자의 취재망에 걸렸습니다. 열두 살 난 소녀였습니다. 혈루증 환자를 예수님께서 접견하시느라 시간이 지체되고 있는 동안에, 그 소녀는 그만 모진 병으로 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념하지 않으셨습니다. 무리들을 헤치고, 회당장 야이로의 집으로 가셨습니다. 죽은 딸이 누워 있는 방으로 들어가, 소녀의 손을 붙잡고, 생명을 되찾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달리다굼!” 하고 외치는 한 마디에 소녀는 살아났습니다. 상가집이 온통 난리가 났습니다. “이럴 수가 있다니? 세상에?”

그러나, 너무도 냉철한 저나 여러분 가운데 몇 분은, 이 장면에서도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So, what?” 그래서 어쨌다는 말이냐고 할 것입니다. 그 소녀가 생명을 되찾고, 나중에 여사도가 되었대? 초대교회에서 무슨 큰 공적이나 세웠대? 이렇게 물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그런 기록이 없습니다. 그저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그럭저럭 살다가, 그 어느 날 세상을 떠났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토록 귀한 시간을 쓰셔서 두번째 생명을 주신 분들이 별로 대스러운 일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그저 보통사람으로 살았다고 봐야 할까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아무 의미없는 일을 하신 결과가 된 거라구요?

여느 사람들이나 마찬가지로, 별로 대스러운 일은 못했을 망정, 그들이 짧거나 길게 살아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 만으로도,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신다면, 그 자체로서 예수님의 은총을 입은 보람을 다한 것 아닐까요?

들에 피는 꽃들을 보십시오. 피었다 질 때까지, 어떤 사람의 눈에 띈 적이 없었다 하더라도, 하나도 서운한 감정이 없이, 다만 하나님 계신 하늘을 향해 방긋 웃는 웃음을 들킨 것, 그것 한 가지 만으로도 자기 할 몫은 다한 것입니다. 얼마나 숭고합니까? 세상에는 들꽃처럼 살다간 무수한 생명들이 있고, 무수한 인생들이 있습니다.

평범하게 살았다고 해서, 자기 역할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존재하는 것 만으로도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다하는 것입니다. 마치 저와 여러분 대부분의 생애 처럼.

<기도> 주 하나님, 별 볼 일 없는 저희들을 이처럼 사랑해 주셔서, 생명을 주시고, 세상을 살아 보게 하시고, 영원을 약속해 주신 것,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의 소박한 본분으로 저희에게도 행복이요, 하나님께도 기쁨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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