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요한복음 12장 1-5, 7절 (새번역)
[1]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가셨다. 그 곳은 예수께서 죽은 사람 가운데에 살리신 나사로가 사는 곳이다. [2]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는데, 마르다는 시중을 들고 있었고, 나사로는 식탁에서 예수와 함께 음식을 먹고 있는 사람 가운데 끼여 있었다. [3] 그 때에 마리아가 매우 값진 순 나드 향유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 발을 닦았다. 온 집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 찼다. [4] 예수의 제자 가운데 하나이며 장차 예수를 넘겨줄 가룟 유다가 말하였다. [5]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지 않고, 왜 이렇게 낭비하는가?”… [7]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로 두어라. 그는 나의 장사 날에 쓰려고 간직한 것을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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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가정마다 남다른 사정들이 있게 마련이지만, ‘베다니 삼남매’ 가정도 나름의 힘든 인생의 조건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의 나이는 추정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결혼적령기는 모두 지난 것 같은데, 모두 미혼인채로 삼남매가 한데 어울려 살았습니다.
얼마나 가난했는지, 얼마나 윤택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예수님의 일행이 때로는 2, 30명, 때로는 1백명 안팎의 규모였을 텐데, 이들이 예루살렘 여행 때에는 곧잘 베다니 삼남매의 집에 묵어 가곤 했습니다. 하룻 밤 정도면 몰라도, 며칠을 묵어 갈 때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참 벅찼을 것입니다.
예수님과 이 삼남매의 가정이 어떻게 이토록 친근하게 되었는지에 관해서도 상세한 설명이 없습니다. 어떻든 예수님과 이 삼남매는 막역한 관계였습니다. 예수님 일행을 자기 집에 맞아들이곤 했던 삼남매는 부호 못지 않은 마음의 넉넉함이 있었고, 대부대를 이끌고 예고없이도 서슴없이 이 삼남매의 집에 들렀던 예수님도 대단하셨습니다.
손님을 맞으면, 가장 힘든 사람은 마르다였습니다. 오죽하면 언니 마르다가 동생이 좀 자기를 도와 주지 않는다고, 예수님께 마리아의 자세를 핀잔하던 장면마저 우리가 보지 않습니까?(눅 10:38-42) 과연, 서로 허물없이 지내던 사이였습니다.
오빠 나사로는, 남자여서 바쁜 누이를 돕지 않았던 것인지, 아니면 죽었다가 살아난(요 11:1-16, 38-44) 이후에도 아직 몸이 불편해서 그랬던지, 아니면 죽었다가 예수님의 능력으로 다시 살아나게 된 나사로 때문에 ‘예수 당’의 성장이 우려되어, 폭력배들이 베다니까지 손을 뻗치고 있어서 그랬던지, 조용히 손님들과 더불어 식사만 하고 있었습니다.
나사로의 생명을 노리는 자들은, 예수님의 생명도 노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훨씬 더 큰 비중으로 예수님의 생명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지지하는 세력이, 유월절을 기하여 급작스럽게 팽창할 수도 있기 때문에,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날 경우에는 대제사장들을 비롯한 기득권 세력이 졸지에 궁지에 몰릴 것을 우려하고 있었습니다.
남자들의 예감보다 여자들의 예감은 정확하고 빠릅니다. 특별히 마리아는 원수들의 칼날이 가까이서 번뜩거리고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언니와 오빠가 나름대로 손님들을 접대하느라고 바쁜 동안, 마리아는 자기 몫의 큰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언제 돌아가실는지 모르는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예수님과의 작별의 예를 행하고 있었습니다.
중동지방 여러 민족의 조상들은 대부분 유목민들이었기 때문에, 유목민 습관을 물려받고 있었습니다. 그 중의 한 가지가, 손님 접대에서 향유를 사용하는 것과, 손님의 발을 닦아 드리는 풍습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 관습을 동시에 치러드리면서, 마리아는 온 마음과 정성을 기울여, 예수님의 죽음을 준비해 드리고 있었습니다.
<기도> 주 예수님, 저희도 베다니의 삼남매, 특별히 마리아처럼 저희의 마음과 정성을 기울여 예수님을 받들며 살기를 빕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