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마태복음 16장 16…23절 (새번역)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십니다.” … [21] 그 때부터 예수께서는, 자기가 반드시 예루살렘에 올라가야 하며,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해야 하며, 사흘째 되는 날에 살아나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 [22] 이에 베드로가 예수를 따로 붙들고 “주님, 안됩니다. 절대로 이런 일이 주님께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하고 말하면서 예수께 대들었다. ]23] 그러나 예수께서는 돌아서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 * * *
예수님이 누구신지 우리가 안다고 자부합니다. 하지만, 베드로도 역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곧 ‘성자’이심을 알아뵌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속죄주’로 오신 분인 것을 극구 부인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절반 밖에는 몰랐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말할 수 없이 아픈 꾸중을 들었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고.
본문 16절에 “선생님은 그리스도십니다” 라는 말은 의역 중에도 의역입니다. ‘선생님’이라고 번역한 희랍어 원어는 단순히 2인칭 단수입니다. 즉 “너” 또는 “당신”이라고 번역해야 맞습니다. 하지만 스승 예수님을 향해서 “너”, 또는 “당신”이라고 호칭하는 것이 어색하여, ‘새번역’ 번역자들이 “선생님”으로 의역하기로 했습니다.
희랍어의 ‘그리스도’라는 어휘는, 히브리어로 구세주를 말하는 ‘메시아’ 그 뜻은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말입니다.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메시아’인 줄 알아본 사람은 베드로 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초점은, 예수님께서 수난의 예언을 하고 계신데, 그것을 단호히 부인하던 베드로가, 호된 질책을 받은 까닭이 무엇인가로 향합니다. 방금도, 예수님께로부터 최상의 칭찬을 받던 베드로가 아니었습니까? 그랬던 그에게, “사탄아, 물러가라”라는 가장 아픈 질책을 하신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베드로나 우리나 간에, 예수님에 대해서 절반만 알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구원하시는 방법이,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원수가 되고 만 인간을, 죄를 기화로 사탄에게 종살이를 하고 있는 인류를, 죄의 심연에서 건져내기 위해 속죄의 죽음을 죽으셔야 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서를 읽으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은, 대제사장들과 로마 총독 빌라도,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기득권자들의 작간으로 이루어진 것 아니냐고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물론 세상 역사는 그렇게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죄없는 독생자 예수의 죽음을 통해 온 인류를 대속하시는 일을 진행하고 계셨습니다. 이것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실 때에, 인간적인 의리를 남보다 자부하던 베드로가, “주여, 절대로 그런 일이 없을 겁니다. 무슨 방도를 써서라도 제가 막겠습니다” 이렇게 인간적인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퍽 의리가 있어 보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고맙게 생각해야 했지요.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생각입니다. 베드로의 뜻대로 됐다면, 하나님의 일은 차단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냥 두지 않으셨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때로, 우리에게도 베드로 같은 실수는 없었을까요?
<기도> 주 하나님, 저희가 인간적인 의리로 하나님의 일을 그르치지 말게 하옵소서.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즉석에서 바로잡아 주셨듯이, 저희의 인간적 과오를 성령님께서 깨우쳐 주셔서, 하나님의 일이 성취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