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마태복음 16장 24-27절 *클라라와 뉴먼의 기념일

[24] …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너라. [25]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찾을 것이다. [26]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 [27] 인자가 자기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자기 천사들을 거느리고 올 터인데, 그 때에 그는 각 사람에게, 그 행실대로 갚아 줄 것이다.” (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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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씨시의 클라라, Clare of Assisi, 1193 – 1253 >> 클라라는 이탈리아 중부지방 아씨시 마을의 한 부잣집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생애의 지표가 그리스도의 복음에 있어야 할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그녀와 같은 고향 출신인 ‘프란시스’ 라는 수도자의 설교를 듣고 감화를 받아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가 여러 청년에게서 혼인신청을 받았지만, 모두 거절하고, 프란시스의 수도회를 찾아가, 수도자가 되기를 바란다는 의지를 알려 주었습니다. 프란시스는 그녀를 바스티아에 있는 베네딕트파 수녀회에 소개해 주었습니다.

클라라의 가족들은 수녀원으로 찾아와서 그녀에게 집으로 돌아갈 것을 권했지만,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녀를 찾아갔던 여동생 악네스가 언니를 따라, 수녀가 되었고, 그 후에는 홀몸으로 살고 있던 어머니마저도 같은 수도회의 수녀가 되었습니다.

이들 세 모녀는 아씨시 산다미아노교회의 전도요원이 되어, 여성선교활동을 일으켰습니다. 이들이 시작한 ‘가난한 여인들의 회’가 오늘날 ‘클라라수도회’의 모체입니다.

몇 년 사이에 이들은 여러 곳에 수녀원을 설립한 후, 수도회 규정을 정하고, 독일과 보헤미아 지방까지 이 수도운동을 확대하였습니다. 그들의 생활은 엄격하였고, 수녀원 안에 어떤 재산도 지니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했습니다. 그래서 바깥으로부터 들어오는 모든 증여는 즉시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클라라의 부친이 남겨 준 막대한 재산이 있었지만, 모두 수도회의 구제사업에 사용했습니다. 클라라는 과로와 단식기도를 일삼았으므로, 일찍부터 건강이 쇠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후배 수녀들에게 “우리는 기계가 아니니, 과로하지 말자” 고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후레데릭 2세의 군대가 스폴레토계곡을 쳐들어 왔을 때에, 수녀원을 침범하려 했습니다. 그들이 사닥다리를 수녀원 벽에다 갖다 대었습니다. 저항할 방법이 없는 것을 안 클라라수녀는 성체함(성체를 모신 함)을 안고 수녀원 창문을 통하여 계곡으로 내려뛰었습니다. 그 기세에 눌려 군대는 물러갔지만, 클라라수녀는 영원히 잠들고 말았습니다.

<< 존 뉴먼 사제, John Henry Newman, 1801-1890 >> 뉴먼은, 그의 20대 초에 옥스포드 동문회에서 이미 탁월한 지도자로 이름이 났습니다. 복음적 신앙의 토대 위에서, 건실한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특별히 영국교회가 세속화의 경향으로 가고 있을 때에, 뉴먼은 소책자운동을 펴서, 신앙 계몽을 펴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이리하여 성공회를 건실한 신앙전통 위에 재건하기 위해서 온 생애를 보냈습니다. 영국에서 개혁교회 신앙과 가톨릭 신앙이 조화를 이뤄 공존하기 위해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그는 오라토리언회를 조직해서, 많은 동료 성직자들과 더불어, ‘교회법에 순종하기보다 성경말씀에 복종하기’ 에 힘썼습니다.

<기도> 주 하나님, 저희가 진정으로, 저희 자신을 부인하고, 저희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께서 앞서 가신 발자취를 따르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저희가 사는 시대를 위하여 ‘복음 하나로 충분한 것’을 증거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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