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까닭

<< 마가복음 9장 28-29절 >> [28] 예수께서 집 안으로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따로 그에게 물어 보았다. “왜 우리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까?” [29]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런 부류는 기도로 쫓아내지 않고는, 어떤 수로도 쫓아낼 수 없다.”

<< 마태복음 17장 19-20절 >> [19] 그 때에 제자들이 따로 예수께 다가가서 물었다. “우리는 어찌하여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까?” [20]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의 믿음이 적기 때문이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산더러 ‘여기에서 저기로 옮겨가라!’ 하면 그대로 될 것이요, 너희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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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나 모든 성직자들은, 사람들로부터 기도 부탁을 받기가 일쑤입니다. 그런데 가끔은 신경성 질환을 앓는 분이나, 악령에 시달리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저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2천 년 전 예수님의 제자들보다도 더 당황했습니다.

더구나 제자들이, ‘우리는 왜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까’라고 물을 때에, 이에 대한 대답이, “믿음이 부족해서 그렇다”(마 17:20) 고 하신 말씀이 떠올라, 제 믿음의 수준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 부끄럽게 생각되곤 했습니다.

그런데 위의 마가복음의 본문(9:29) 을 보면, ‘믿음’이 부족해서라고 안하고, ‘기도’가 부족해서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같은 질문에 대한 대답이 서로 다르게 기록되어 있을까요? 믿음이 있는 사람이란, 인간의 믿음의 능력을 발휘하면 귀신도 쫓아낼 실력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입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로, 하나님께서 도와 주실 것을 빌 때에, 성령께서 도우시는 것이기 때문에, 마가복음에서 ‘믿음이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다’ 고 한 말이나 마태복음에서 ‘기도하는 사람이 할 수 있다’ 고 한 말은 동일한 말입니다.

그런데 저의 이런 미약한 점을 하나님께서 아시고, 저의 믿음을 양육하시기 위해 이런 일을 제게 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저의 가족 중의 한 사람이 몹시 위중한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제 몸이 수술대 위에 올라가는 비상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는 애타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매달리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 하나님, ‘아무’를 살려 주옵소서. 그에게서 아직 소망을 거두지 마옵소서. 수술은 인간 의사들이 하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집도해 주시옵소서. 정말 간절히 빕니다. 제발 그를 살려 주옵소서. 네? 하나님” 하면서 징징댔습니다.

이렇게 제 맘 속에 있는 간곡함을 그대로 하나님께 아뢰는 기도를 계속했습니다. 제가 어떤 기도를 드리고 있는지 전혀 신경도 안 쓰고 기도했습니다. 수술대에 올라가는 가족이 애처롭고 안타까와, 자연히 제 입에서 이런 간절한 기도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그 후로는, 저에게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는 이들, 특별히 신경성 질환을 앓고 계신 분들을 위해서도, 이렇게 마음을 열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이것이 제가 제 가족을 위한 기도였고, 또 그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셨기 때문에, 마음 놓고 그때 그 기도, 즉 저의 ‘믿음의 기도’, ‘기도의 믿음’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기도> 주 하나님, 저희 기도가 항상 하나님 앞에 진솔한 기도, 마음에 사무치는 기도, 애절한 믿음의 기도가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하나님과 소통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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