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마태복음 18장 15…20절 (새번역)
[15]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 둘이 있는 자리에서 그에게 충고하여라. 그가 너희 말을 들으면, 너는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16] 그러나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거라. 그가 하는 모든 말을, 두세 증인의 입을 빌어서 확정지으려는 것이다. [17] 그러나 그 형제가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여라. 교회의 말조차 듣지 않거든, 그를 이방 사람이나 세리와 같이 여겨라. … [19] 내가 진정으로 거듭 너희에게 말한다. 땅에서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합심하여 무슨 일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에게 이루어 주실 것이다. [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여 있는 자리, 거기에 내가 그들 가운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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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세 사람은 한 사람보다 두세 배 힘이 있는 것이 아니라, 200배 300배로 힘이 있습니다. 두세 사람이 기도하는 곳에는 성령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혼자 있을 때에 성령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다는 말은 아닙니다. 두세 사람이 힘을 합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대단히 기뻐하셔서, 힘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도 일을 혼자 하시지 않았습니다. 혼자 하실 수 없어서 함께 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함께 일하는 훈련을 시키시기 위해서 함께 하셨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해서 가룟 유다에 이르기까지 함께 하는 훈련에 동참시키셨습니다.
** 오늘 본문은 교회의 질서에 관한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무법한 사람이 있거든, 일단 둘이 만나 은밀한 설득을 해 보고, 만약 안 되면, 두세 사람의 증인을 세워서 바로잡으라고 하십니다. 그런데도 고집을 세우고 잘못을 고치지 않으면, 그때에는 일을 공식화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목사였던 제 아버지는 교회치리를 위하여 교회재판장 석에 앉아야 했던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회고록을 보면, 교회재판의 재판장 자리에 앉는 것만큼 힘들고 가슴아픈 일이 없다고 했습니다. 차라리 아버지가 피고인의 자리에 대신 앉아 주고 싶을 만큼 고통스럽다는 말씀을 남겼습니다.
*** ‘두세 사람’ 이라는 주제를, 오늘은 좀 건설적인 일에 적용해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교회 안에는 각종 은사를 받은 분들이 가득합니다. 교회의 다양한 사역을 위해서 서로 연합하여 섬기면, 상상도 못할 놀라운 일들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두 인물의 모범적인 합심의 예를, 여호수아와 갈렙의 컴비네이션에서 우리는 봅니다. 두 사람은 믿음에 있어서도 사명감에 있어서도 일치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윗자리를 두고 서로 다툰 일이 한 번도 없었고, 사적인 욕심을 품은 적도 없었던 것이 무척 돋보입니다.
**** 과연 개인적 욕심을 내려놓는 것이, 합심합력의 가장 우선적 전제라고 봅니다. 그리하여 두세 사람이 합심 기도하면, 각 교회가 힘을 얻고, 각 선교회가 힘을 얻고, 각 신학교가 힘을 얻고, 교회의 각종 지방회가 힘을 얻게 됩니다. 두세 사람이 모여 기도하고, 서로 뭉쳐 일하면, 성령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또 합심의 모범을 교회가 보이게 되면, 우리 사회, 특별히 정치하는 사람들이, 저들의 이권을 위한 야합을 버리고, 애국하는 마음으로 합력할 줄 알게 될 것이고, 사회 각계 각층에서 합심하는 힘을 보이게 될 것입니다.
<기도> 주 하나님, 저희 교회가, 먼저 솔선하여 하나님의 교회 위해 두세 명이 서로 힘을 합하는 본을 보이게 하소서. 이로써 온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 위하여 힘을 합하는 데에 이르도록 성령께서 역사하시기를 빕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