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마태복음 18장 27-33절 (새번역)
[27] 주인은 그 종을 가엾게 여겨서, 그를 놓아주고, 빚을 없애 주었다. [28] 그러나 그 종은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하나를 만나자, 붙들어서 멱살을 잡고 말하기를 ‘내게 빚진 것을 갚아라’ 하였다. [29] 그 동료는 엎드려 간청하였다. ‘참아 주게. 내가 갚겠네.’ [30] 그러나 그는 들어주려 하지 않고, 가서 그 동료를 감옥에 집어넣고, 빚진 돈을 갚을 때까지 갇혀 있게 하였다. [31] 다른 종들이 이 광경을 보고, 매우 딱하게 여겨서,가서 주인에게 그 일을 다 일렀다. [32] 그러자 주인이 그 종을 불러다 놓고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네가 애원하기에, 나는 너에게 그 빚을 다 없애 주었다. [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긴 것처럼,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겼어야 할 것이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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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여기 등장하는 ‘못된 종’은, 자기 주인에게 빚졌다가 탕감 받은 돈이, 만 달란트라고 했습니다(마 18:24). 한 달란트가 노동자 15년의 품삯이라고 하니까, 일년 품삯을 우리 시가로 3천만원이라고 가상하여 환산하면, 한 달란트가 4억 5천만 원이 되는 셈입니다. 그러니까 만 달란트라고 하면, 물경 4조 5천억 원이라는 큰 돈이 됩니다.
세상에 이런 큰 돈을 빌릴 종이 어디 있으며, 또 이런 큰 돈을 종에게 빌려 줄 주인이 어디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워낙 스케일이 크셔서, 이런 엄청난 금액을 다루는 예화를 지어내신 것일까요? 아닙니다. 주제를 ‘죄의 용서’ 로 하시려니까, 스케일이 커지신 것입니다.
‘4조 5천억 원보다 더 엄청난 스케일의 죄’, 곧 죽어 마땅한 죄를 지은 내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용서함을 받아 구원에 이르렀다면, 아무리 나에게 잘못을 범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죽을 죄를 용서 받은 나로서, 모두 용서해 주어야 마땅하다는 말씀인 것이지요.
( 2 ) 용서의 본을 보인 분을 소개합니다. 한국에 선교사로 오셨던 사제 데이빗 코벳과 그의 사모 앨리슨(David & Allison Cobett)을 제가 처음 만난 것은 호주 애들레이드를 여행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 내외분이 한국에 온 것은, 아직 한국이 발전도상에 있던 때였습니다. 부산 지역에서 매일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소박한 성격으로 한국사람들과 눈높이를 맞추려고 겸손히 한국말을 배웠습니다. 안식년에 호주 교우들로부터 선교용 랜드로바를 한 대 사서 타라고 받은 돈을 교회 부지 구입비로 내놓았습니다. 그 교회가 동래교회입니다.
그런데 언젠가 교회 일각에서, ‘이제는 한국교회는 한국인들이 자주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선교사들의 조기귀국을 종용한 일이 있었습니다. 개척전도의 일꾼이었던 코벳 신부 내외를 한국교회는 축출을 하고 만 것입니다.
그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아쉬움을 안고, 사랑하는 한국을 떠났습니다. 그리하여 고향교회가 있는 애들레이드에서 목회를 하며 여생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두고 온, 한국교회가 못내 그리워 하루도 한국교회를 잊지 않고 기도하며 여생을 보냈습니다.
하루는 사제관에 괴한이 침입하여, 캄캄한 차고에서, 신부님이 그 괴한에게 얼굴을 심하게 타격을 받아 사경을 헤매는 어려움을 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가 정신이 돌아왔을 때에 경찰 수사과에서 병실을 찾아와 코벳 사제에게 인상착의를 말해 달라고 졸랐습니다. 코벳 신부님은 “나는 사제요” 라고 일갈하고는 입을 다물었습니다. 단호히 거절한 것입니다.
코벳 사제는 호주에서 연전에 돌아가셨고, 사모님께서도 지난 8월 7일에 돌아가셔서, 그의 장례식 광경을 동영상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운구가 시작되고 들려온 음악은 아리랑 노래였습니다.
<기도> 주 하나님, 일생 용서의 본을 보인 코벳 신부 내외의 영혼이 하늘나라의 영원한 빛에 거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