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금 또는 자기 수입으로 살아야 정석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데살로니가전서 2장 9-12절 (새번역)

[9]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의 수고와 고생을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분 가운데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복음을 여러분에게 전파하였습니다. [10] 또, 신도 여러분을 대할 때에, 우리가 얼마나 경건하고 올바르고 흠 잡힐 데가 없이 처신하였는지는, 여러분이 증언하고, 또 하나님께서도 증언하십니다. [11]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이, 우리는 여러분 하나하나를 대합니다. [12] 우리는 여러분을 권면하고 격려하고 경고합니다마는, 그것은여러분을 부르셔서 당신의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하게 살아가게 하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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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개척기에 있었던 교회에서 제가 일하던 때의 일입니다. 주일에 교회에 모처럼 출석하신 할머니 교우분이 제 손을 잡으면서, “아이고, 내가 신부님 월급을 못 드려서 어떻게 하나?” 하시며 탄식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무슨 말씀인지를 몰라서, “무슨 말씀이세요? 저는 잘 살고 있습니다. 할머니께서 월급을 주시는 것 아니에요” 했습니다.

그랬더니, 자꾸만 “월급을 못 드려 미안해요. 내가 형편이 좀 나아지면 줄게” 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할머니가 교회 다니신지는 오래 되지만, 자신의 헌금으로 사제의 생활비가 지불되는 것으로 아셨던 모양입니다.

성직자에게 교회가 생활비를 지불합니다. 그것을 ‘임금’이나 ‘월급’이라는 개념으로 보지 않습니다. 성직자가 하는 일은 양무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와 그 영광에 이르게 하는 일”(오늘 본문 12절)인 것이므로, 이것은 값으로 계산할 수 없는 귀한 일이라는 뜻에서, ‘salary’(급여) 또는 ‘wage’(임금)이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대신에 영어권에서는 ‘stipend’(사례비)라는 말을 씁니다. 그래서 사례금을 지불하는 쪽에서도, 송구스런 마음으로 건네고, 받는 성직자 쪽에서도 송구스런 마음으로 받습니다. 그러니까 ‘많다’ ‘적다’ 는 논의 자체가 불경한 일임을 피차에 알고 있습니다.

성직자가 되는 사람이 사례금으로 생활하기 위해서 성직자가 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며, 또 성직자들 사이에서, 사례금의 다과를 토론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이것 역시 ‘성직’을 ‘세속화하는 일’이므로 불경한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복음을 듣는 사람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값없이 베푸신 구원의 은총을, 복음을 듣는 사람이 부담스럽게 여길까 우려하여, 바울 사도는 밤낮으로 가죽을 매만지며, 천막을 깁고, 이 노동을 통하여 선교비 충당을 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9절)

오늘날은 다분히 ‘현실주의’-‘기능주의’ 시대여서, ‘학교도 비지니스다’, 또는 ‘병원도 비즈니스다’ 이런 말을 누구나 서슴없이 합니다. 이를 부인하는 사람을 오히려 천치 취급합니다. 그러나 진정코 ‘교회도 비지니스다’ 이런 말은 없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야말로 ‘말세지말’(말세 가운데도 맨 마지막 기간)에 해당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교회를 거룩하게, 경건한 성직을 경건하게, 하나님의 영광이 성소에 차고 넘치는 우리들의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시다. 사도 바울이 혼신을 바쳐, ‘거룩한 복음 사역’에 흠집을 내지 않기를 바랐던 것을 본 받아, 우리도 정성을 다해 거룩한 교회를 보전합시다.

<기도> 주 하나님, 하나님의 교회가 거룩함을 잃는 일이 없도록, 신도들의 정성어린 헌금과 교회의 재정관리를, 거룩한 손길로 관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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