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야고보서 2장 14-18절 (신복룡의 성경)
[14] 나의 형제 여러분, 어떤 사람이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 믿음이 그 사람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13]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날 먹을 양식조차 떨어졌는데, [16] 여러분 가운데 누가 그들의 몸에 필요한 것을 주지 않으면서 말하기를,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하게 녹이고 배부르게 먹어라’ 고 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17] … 믿음에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그 믿음은 죽었습니다. [18] 또 어떤 사람은 …, ‘당신에게는 믿음이 있지만, 나에게는 실천이 있소’ 라고 합니다. 그러면 나는 대답하기를, ‘당신은 실천이 따르지 않는 믿음이라는 것을 보여 주지만, 나는 내 실천으로 내 믿음을 보여줄 것입니다’ 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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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신앙생활은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으로 시작한 신앙생활에 자연히 실천이 따라가게 마련입니다. 마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눈이 따라가고 몸이 따라가듯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신앙생활은 마음으로 시작해서 몸으로 귀결되는데, 몸으로 귀결되는 현상을 ‘믿음의 실천’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실천 없는 믿음이 있을 수 없고, 반대로 믿음 없는 실천도 있을 수 없습니다. 믿음이 원인이요, 실천이 결과라면, 원인(믿음) 없는 결과(실천)가 없고, 모든 결과(실천)는 원인(믿음)이 있어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서의 ‘믿음과 행위’ 논쟁은 더 계속될 필요가 없습니다. 종교개혁기에 야고보서를 정경(교회가 인정하는 신구약성경)에 둘 것이냐, 퇴출할 것이냐 하는 논쟁이 더 이상 계속되지 않는 것은 바로 이때문입니다.
( 2 ) 사도 바울이 쓴 편지 가운데 제일 나중에 쓴 편지가 디모데후서였습니다. 그 편지에 말세에 이루어질 일에 관해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했습니다:
“… 이것을 알아 두십시오. 말세에 어려운 때가 올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뽐내며, 교만하며, 하나님을 모독하며, 부모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며, 감사할 줄 모르며, 불경스러우며, 무정하며, 원한을 풀지 아니하며, 비방하며, 절제가 없으며, 난폭하며, 선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무모하며, 자만하며, 하나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며, 겉으로는 경건하게 보이나, 경건함의 능력은 부인할 것입니다.” (딤후 3:1-5)
어떻습니까? 오늘 우리들의 시대와 대략 맞아들어가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현상들은 ‘불신앙’이라는 원인이 있어서 생긴 결과라고 봅니다. 이런 결과가 원인 없이 생겨난 것은 아니겠지요.
( 3 ) 저와 저 자신이 속해 있는 교회의 현실을 바라보면서, 반성하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들의 교회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때때로 모이는 것이 무엇을 위해 모이고 있는가? 모여서 찬송 부르고, 말씀 듣고, 교제 나누고, 특별히 이런 저런 헌금도 하는데, 과연 무엇을 위해 하고 있는 일들인가? 하나님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우리 교회들이 교회 자체를 위해 존재하는지, 진정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의심스럽기 때문에 아연해지곤 합니다. 일어난 현상부터 진단해서, 그 원인인 ‘믿음’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총체적 회개가 필요한 때입니다. 행함이 없으면, 우리들에게 사랑이란 말도 의심스럽고, 믿음도 의심스럽기 때문입니다.
<기도> 주 하나님, 저희의 행함 없음을 통감합니다. 그래서 저희 자신에게 사랑도 믿음도 의심스러워집니다. 비오니, 믿음을 회복시켜 주시고, 사랑의 실천이 따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