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거룩한 십자가’ 기념일에 (공동번역)
요한복음 3장 13-17절 [13]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의 아들 외에는 아무도 하늘에 올라간 일이 없다. [14] 구리뱀이 광야에서 모세의 손에 높이 들렸던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높이 들려야 한다. [15] 그것은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려는 것이다. [16]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주셨다. [17] 하느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단죄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시켜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18] 그를 믿는 사람은 죄인으로 판결받지 않으나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죄인으로 판결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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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I) 그리스도(X, ‘k’ 발음)는 하느님의(Th) 아들(U), 구주(S)시다” 라는 표제는 기독교 신앙을 대표하는 신앙고백입니다. 그래서 괄호 안의 글자를, 희랍어로 읽으면, ‘IXThUS’(익투스) 즉 ‘물고기’ 라는 단어가 됩니다. 그래서 비록 낯선 사람 앞에서도 물고기 형상을 그려서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라는 사인을 보내곤 했습니다.
이것이 초대교회로부터 주후 4세기 초에 이르는 모진 박해 시대에 살던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통용되던 비밀한 암호였습니다. 그러던 것이 4세기에 이르러, 물고기를 대신해서 십자가가 기독교인들 사이에 새로운 암호로 사용되었습니다.
콘스탄틴대제(Constantine the Great)가, 로마제국의 통치권을 걸고 막센티우스와 결전을 벌이고 있을 때에, 신실한 기독교인이었던 그의 어머니 헬레나(Helena)의 믿음을 따라, 콘스탄틴이 하느님께 간곡히 가호를 빌었습니다. 그때 하늘에 십자가 형상과 예수님이 보이면서, “그대는 승리하리라”는 로마글자까지 떠 있었습니다.
전쟁은 콘스탄틴의 대승으로 끝났고, 그는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곧 십자가는 로마의 상징이 되었고, 로마군인들의 방패에는 십자가를 그리게 되었습니다.
그후, 그의 모친 헬레나는 성지를 순례하면서, 주님께서 못박히셨던 십자가를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이를 기념하여 예수님께서 묻히셨던 바위무덤을 찾아, 바로 그곳에 성십자가기념교회당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안치했던 십자가를 페르시아 군이 쳐들어와서 약탈해 간 것을, 헤라클레우스 황제가 군사를 동원하여 그 십자가를 도로 찾았습니다.
십자가를 예루살렘의 골고다로 운반해 오던 날, 황제는 노상에 도열해서, 황제의 관복을 벗고, 맨발로 충성의 경례를 하면서 십자가를 맞이했습니다. 이런 전설적 고사들을 배경에 둔 것이 ‘거룩한 십자가’ 기념일이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험하고, 초라하며, 치욕스런 십자가가, 이 세상의 모든 권위 위에 있는, 최대의 존경을 받을 ‘거룩한 십자가’ 가 되었습니다.
그후로, 세속 역사에서도, 목숨을 걸고서라도 사수해야 할 가치를 나타낼 때면, 십자가를 사용합니다. ‘빨간 십자가’는 병원의 의료인들이 존중하는 생명과 건강을, ‘녹색의 십자가’는 건강과 자연을 지켜 주고 보호하는 활동을, 또 수많은 나라의 국기에는,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기독교 가치관을 상징하는 숭엄한 표지로 십자가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흔하게 쓰일수록 세속화되기 쉬운 세태 속에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십자가가 세속의 가치관이 아니라, 인류의 죄를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십자가임을, 영생할 것이라는 우리들의 확고한 믿음, 죄를 소멸하시는 하느님의 권세, 값없이 베푸시는 은혜와 자유, 하느님의 최후의 승리를 믿는 믿음의 표지로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기도> 주 하느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 높이 들리우시므로, 인류 구원의 단 하나의 길이 되셨나이다.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 이르기까지 십자가를 따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