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키프리안 주교 기념일에 (공동번역)
디모데전서 1장 12-15절 [12] 내가 맡은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신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께 나는 감사합니다. 주께서 나를 성실한 사람으로 인정하셔서 당신을 섬기는 직분을 나에게 맡겨주신 것입니다. [13] 내가 전에는 그리스도를 모독하고 박해하고 학대하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믿지 않을 때에 모르고 한 일이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나를 자비롭게 대해 주셨습니다. [14] 이렇게 우리 주님께서 나에게 은총을 차고 넘치게 베푸셨고,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자들이 가지는 믿음과 사랑을 나에게 풍성하게 주셨습니다. [15]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말은 틀림없는 것이고 누구나 받아들일 만한 사실입니다. 나는 죄인들 중에서 가장 큰 죄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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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프리안(Cyprian, 200 ? – 258)은 북부아프리카 튜니지아 출신입니다. 그의 60여 년의 생애 중에 태반을, 카르타고 지방에서 변호사와 수사학 교수로 살았습니다. 그의 나이가 46세가 되어서야 성경과 주석서들에 심취하였고, 이윽고 이교도 생활을 벗어버리고, 세례교인이 되어 새로운 인생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얼마나 역동적으로 신앙생활을 했던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화를 주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았고, 당시 지중해 연안에 창궐하던 전염병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갈 때에도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환자들을 섬겼습니다.
얼마 후, 그는 사제 안수를 받게 되었고, 다시 2년 후에는 카르타고 교구의 주교로 선출되었습니다. 로마 제국의 기독교 박해가 가장 극심하던 주후 제3세기 데시우스 황제와 발레리안 황제 치하에서, 주교들은 체포되지 않은 사형수나 마찬가지 형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프리안 주교는 교구 안팎을 바쁘게 다니며 ‘노바시안 이단’(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던 이단)을 물리치는 일 등, 교회를 수호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는 동안 그의 신분이 노출되어, 일차는 해외추방을 당하기도 했지만, 다시 체포되었을 때에는 재판에서 사형언도를 받고 말았습니다.
그를 고문하던 집행관들이 교구 사제들의 명단을 알려 주면 고문을 그치겠다고 했지만, 그는 끝까지 입을 다물었습니다. 형장으로 끌려나가 옷을 벗기고 눈을 가렸을 때, 그는 무릎을 꿇어 임종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칼날이 그의 목을 잘랐습니다. 이것이 주후 258년 9월 15일의 일이었습니다.
성직생활 10년 간에 책도 여러 권 집필했습니다. ‘순교에의 권유’라는 저서도 있었습니다. 키프리안 주교가 도나투스라는 동료에게 보낸 편지가 원본 그대로 지금껏 남아 있어서, 여기에 그 일부분을 인용합니다.
{ …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 세상을 산다는 것은, 그 자체가 어둠 속을 헤매는 짐승과도 같은 생활이었습니다. 저는 욕정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고, 먹고 싶은 대로 먹고, 마시고 싶은 대로 마시고, 저를 제어할 힘은 세상에 아무 것도 없다며 활개치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저같은 죄인에게, 영광스럽게도 새 생명을 시작하는 날을 주셨던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저의 영혼은 깨끗히 씻김을 받았고, 천상의 성령을 제 영혼이 호흡하기 시작했습니다. 온갖 의문들은 사라졌고, 진리의 빛이 저를 감쌌습니다. 죗된 저의 육신이, 다시는 세속에 물들지 않도록 하느님의 크신 힘이 저를 도우셨습니다. 사탄이 다시는 엄습하지 못하게 저를 인도하고 계셨습니다. … }
<기도> 주 하나님, 비록 10년이라는 짧은 세월 동안 만이라도 그리스도인의 감격스러운 삶을 살았던 키프리안 주교를 생각하며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의 영혼도 성령님을 모시고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