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니니안 주교의 기념일에 (공동번역)
[서신] 디모데전서 1장 15-16절 [15] … 나는 죄인들 중에서 가장 큰 죄인입니다. [16] 그런데도 하느님께서는 이와 같은 나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앞으로 당신을 믿고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는 사람들에게 나를 본보기로 보여 주시려고 먼저 나에게 한량없는 관용을 베푸신 것입니다.
[복음] 루가복음 6장 43-44절 [43]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44] 어떤 나무든지 열매를 보면 그 나무를 알 수 있다.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딸 수 없고, 가시덤불에서 포도를 딸 수 없다.
* * * *
니니안(Ninian, 360 ? – 432 ?) 주교의 정확한 생년은 알 수 없고, 다만 추정하기로 360년 경 영국 북부 지방의 한 족장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사실 밖에는 모릅니다. 그의 아버지가 누구에게 복음을 들었는지, 이미 기독교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 니니안을 장교로 출세시키고자 했지만, 아들은 도리어 성직에 뜻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니니안은 로마로 가서 기독교 신학을 배우고, 394년에 주교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후 고향 영국으로 돌아와, ‘칸디다 카사’(오늘날의 Whithorn, ‘하얀 집’)에 수도원을 설립하고, 그곳에서 선교사들을 훈련하여, 사면 팔방에 복음전도자로 파송했습니다. 칸디다 카사는 니니안 생전에 지은 건물로, 당시의 영국 유적지 가운데 석조건물로는 대표적인 건물입니다.
역사가 앨레드(Aelred)는 니니안 주교의 생애와 치적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 청년 니니안은 로마로 여행하여, 교황이 친히 강론하는 신학수업을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미 신실한 신자였던 그가 로마에 가기 전에 영국에서 이미 여러 성경교사들을 찾아 만나 배운 지식이 다소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로마에서 모든 신학적 지식을 다시 바로잡았을 것이고, 정통적인 신학체계를 이루어가지고 돌아왔으리라고 봅니다.
마치 꿀벌이 이 꽃 저 꽃에서 꿀을 빨지만, 그의 몸에 꿀을 담아 벌집에 돌아왔을 때에는 온전한 꿀이 되어 있듯이, 그의 심령에서 복음진리를 쏟아낼 때에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진리의 빛 앞으로 인도할 수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로마에서 신학수업을 받고 있던 시기에는 도시생활에 익숙해 있었지만, 영국 서부 지방의 낙후한 농촌에서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기독교 신앙을 설명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서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들이, 생활 속의 의미와 기쁨, 그리고 일상적인 감동을 맛보며 살게 되었습니다.
니니안은 귀향길에 프랑스 뚜르 지방에서 당시 그곳의 주교로 있던 마띤(Martin, 후일에 성인으로 추대됨) 주교를 만나, 한 동안 함께 지냈고, 귀국한 후에도 두 주교 사이에는 교분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주교 니니안이 교구 내의 각 지방을 방문할 때마다, 사람들이 인산인해로 모여들었고, 모인 무리들은 니니안의 강론에 탄복했습니다. 진리의 말씀에 심취하여, 늦도록 흩어질 줄을 몰랐던 그들은, 자기들의 지방에 교회를 설립해 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노년에 이르러 더 이상 여행하기 어렵게 되기까지 끊임없이 교회를 설립하던 니니안 주교는 어느 날 조용히 눈을 감고 말았습니다. 복된 일생을 마친 것입니다. }
<기도> 주 하느님, 니니안 주교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가 이르는 곳마다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교회를 세우게 되고, 많은 사람들을 훈련하여 선교사로 파송하던 일을 흠모합니다. 주여, 저희에게도 같은 은혜를 베푸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