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추계재, 성직성소를 위한 날 (공동번역)
고린토 첫째 편지 3장 7-8절. [7] 심는 사람이나 물을 주는 사람은 중요할 것이 없고 자라게 하시는 하느님만이 중요하십니다. [8] 심는 사람과 물주는 사람은 동등한 사람이고 각기 수고한 만큼 삯을 받을 따름입니다.
요한복음서 4장 35-37절. [35] … 저 밭들을 보아라. 곡식이 이미 다 익어서 추수하게 되었다. [36] 거두는 사람은 이미 삯을 받고 있다. 그는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알곡을 모아 들인다. 그래서 심는 사람도 거두는 사람과 함께 기뻐하게 될 것이다. [37] 과연 한 사람은 심고 다른 사람은 거둔다는 속담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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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의 계절인 가을에, 밭에서 작물들도 거두어들여야겠지만, 영적인 작물 곧, 우리들이 복음의 씨앗을 뿌려 가꾼 ‘영적인 작물’들도 수확을 준비해야 한다는 의미로, 교회가 ‘추계재’ 성직성소를 기도하는 날을 두었습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들은 우리들의 영적인 농사, 곧 전도의 일이 혼자 되는 일이 아닌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씨를 뿌리는 사람도 필요하고, 뿌린 씨가 싹이 돋으면 부지런히 물 주어 가꾸는 사람도 필요하고, 잡초가 웃자랄까 김매는 사람도 필요하고, 낫을 들고 나가서 거두어 들여야 할 사람도 필요합니다.
한 사람의 영혼에 복음의 씨앗을 심어 마침내 거두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동원되는 것일까요? 가령, 제자 베드로의 경우를 보면, 그의 동생 안드레가 자기 형에게 예수님을 만나볼 것을 권했습니다. 그런데 안드레를 예수님께 먼저 보낸 사람은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있기까지 그의 부모 즈가리야-엘리사벳이 동원되었던 것을 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님 앞으로 안내되었고, 그 날부터 예수님의 ‘친제자’가 되어 3년을 훈련받았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승천하신 후, 오순절 날에 성령께서 강림하시고 나서, 그가 복음의 ‘왕전도자’로 무리들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이 공식으로 전도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의 예를 봅시다. 그는 신학교는 다녔는데, 복음을 배우지 못하고, 유대교 율법주의를 배웠습니다. 그가 ‘십자가 복음’의 신학자가 되기까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직코스로 만나 사도가 되었다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니까, 바울을 위해 동원된 사람도 꽤 많았습니다. 그가 최초로 복음을 듣게 된 것은 예루살렘 산헤드린(국회) 뜰에서의 일이었습니다. 거기 체포되어 온 그리스도인 스데파노에게서 설교(행 7장)를 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스데파노의 설교를 고분고분 받아들인 청중이 아니었고, 완강한 반대자였습니다.
하지만 목숨을 다해, 죽는 순간까지 간곡한 마음으로 외치던 스데파노의 복음을 아무리 귀에서 씻어내고 싶었어도, 새록새록 그의 영혼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기독교인들을 말살하려고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그는 하늘로부터 친히 임하시는 예수님을 맞닥뜨리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강권적으로 복음전도자 과정의 절차를 밟아 가꾸셨습니다. 다메섹으로 보내서 믿음의 형제들을 만나게 했고, 아라비아 사막에서 주님의 강훈련을 3년간 받은 후, 예루살렘으로 가서 야고보를 비롯한 사도들과 교류를 시작했습니다. 한 명의 전도자는, 성령께서 주관하시어, 수많은 성도들의 힘으로 양육됩니다.
<기도> 주 하느님, 저희를 하느님 나라의 알곡들로 키워내기 위해 여러 영적 농사군들을 보내 주셨음을 감사드립니다. 그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게 하옵소서. 저희와 모든 영혼들이 실한 알곡으로 양육되어 하느님 나라 창고에 들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