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영광스런 때는 언제인가?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모든 한국의 순교자들 기념일에 (공동번역)

요한복음서 12장 27-30, 32절 [27] “내가 지금 이렇게 마음을 걷잡을 수 없으니 무슨 말을 할까? ‘아버지, 이 시간을 면하게 하여주소서.’ 하고 기원할까? 아니다. 나는 바로 이 고난의 시간을 겪으러 온 것이다. [28] 아버지,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소서.” 그때에 하늘에서 “내가 이미 내 영광을 드러냈고 앞으로도 드러내리라.” 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29] 거기에 서서 그 소리를 들은 군중 가운데는 천둥이 울렸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천사가 예수께 말하였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30]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것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너희를 위해서 들려온 음성이다. … [32] 내가 이 세상을 떠나 높이 들리게 될 때에는 모든 사람을 이끌어 나에게 오게 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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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여러분이 영광을 받으실 때는 언제입니까? 사회적으로 큰 공훈을 세워서 표창을 받으시게 된 때를 생각하십니까? 또는 어떤 우러러볼 만한 지위에 앉게 되셔서 첫 출근을 하시게 되었습니까? 여러 가지 영예스러운 일을 생각해 보실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영광’이라는 말은, 영예로운 상을 받게 되었다든지, 영예스러운 지위에 오르게 된 때를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영광’(희랍어 ‘doxa’) 은 오늘의 본문에서와 같이, ‘존재의 목적에 부합하는 역할을 행하게 되었을 때’ 에 ‘영광을 받는다’는 표현을 씁니다.

가령, 하느님의 경우,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예외없이 하느님의 존재목적에 부합하시므로, 24시간 365일 영광을 받으실 분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세상에 오셔서, 하늘나라 복음을 전하시고, 인류의 구원을 위해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죽음을 당하시는 것이 그의 존재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으신 것은, 골고다 십자가 위에서 모든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시고 죽어가실 때가 그분께서 영광을 받으시던 때였습니다. 우리 인간들이 생각하는 ‘영광’과는 너무 거리가 멀지 않습니까?

( 2 ) 오늘은 한국에서 순교하신 모든 분들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한국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오셨다가 순교하신 선교사님들, 그리고 한국천주교와 한국기독교의 모든 순교한 성직자, 그리고 평신도의 순교 사적에 관하여는 여기서 기록을 생략합니다. 그 분들의 생애와 순교사화에 대해서는 다른 자료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 3 ) 한국 성공회의 순교자들의 생애와 순교의 내력을 간략히 메모합니다. 가) 윤달용(모이서)신부 : 서울대성당 사제로 1950년 7월 17일 공산군 정치보위부에 연행되었고, 그후 처형된 것으로 판단됨. 나) 조용호(디모데)신부 : 인천성당 관할사제로 1950년 7월 25일 공산군에 연행되어, 그후 처형된 것으로 판단됨.

다) 이원창(미가엘)신부 : 평양교무구 총사제로, 6.25 당시 최후까지 교회와 성사를 지키기 위해 평양에 남아 있다가, 처형된 것으로 판단됨. 라) 이도암신부(영국인 선교사, Albert Lee) : 1950년 7월 26일 공산군에 체포당해, 그후 곧 처형된 것으로 판단됨.

마) 홍갈로신부(영국인 선교사, Charles Hunt) : 1910년대부터 한국선교사로 일함. 그의 최종 직책은 서울대성당 사제. 1950년 7월 18일 공산군에 연행당해, 도보로 강제납북 도중에 11월 20일 납북 행로에서 추위와 배고픔으로 운명함. 바) 마리아 클라라 수녀 : 다른 납북 선교사들과 함께 강제 납북 당해, 압록강변 중강진 근처 한 골짜기에서 배고픔과 모진 학대와 추위에 시달리다 못해 별세했습니다.

<기도> 주 하느님, 저희의 수고와 고난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라면 기꺼이 감당하게 하옵소서. 이것이 저희의 소망이 되고 영광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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