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도 가난하게 사셨던 분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공동번역) * 빈센트 드 폴 기념일

루가복음서 9장 1-6절 [1]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를 한자리에 불러 모든 마귀를 제어하는 권세와 병을 고치는 능력을 주셨다. [2] 그리고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며 병자를 고쳐주라고 보내시면서, [3] 이렇게 분부하셨다. “길을 떠날 때 아무것도 지니지 마라. 지팡이나 식량 자루나 빵이나 돈은 물론, 여벌 내의도 가지고 다니지 마라. [4]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그 곳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 있어라. 그러나 누구든지 너희를 환영하지 않거든 그 동네를 떠나라. 떠날 때에는 그들에게 경고하는 표시로 발에 묻은 먼지를 털어버려라.” [6] 열두 제자는 길을 떠나 여러 마을을 두루 다니며 이르는 곳마다 복음을 선포하고 병자를 고쳐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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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가복음서 16장에 나오는 병든 거지 라자로의 이름을 따서, ‘라자로 선교회’를 창설한 ‘빈센트 드 폴’(Vincent de Paul, 1581 – 1660)이라는 분의 기일을 오늘 세계교회가 기념합니다. 그는 프랑스 가스코니 출신으로, 프란시스 수도회에서 훈련을 받은 후, 약관 19세에 사제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후 10여년 동안, 사제가 공석인 곳에서 대리사목자로 일하며 지내다가, 큰 회심의 체험을 거치고서, 그의 온 재산을 모두 처분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일에 기부했습니다. 그리고는 ‘루이 드 마릴라’ 와 더불어 공동체를 창설했고, 나중엔 구제활동을 위한 수녀회도 창설했습니다. 이 수녀회는 봉쇄수녀회가 아니고, 대외 봉사활동을 위해서 늘 열려 있는 수녀회로서는 역사상 처음 생겼습니다. 빈센트는 노예계층, 전재민, 수감자들과, 그 밖의 모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빈센트가 그의 동료에게 보냈던 편지 한 토막을 여기 소개합니다.

{{ 가난한 이들을, 그들이 입은 옷이나 겉모양, 또는 그들의 지적 능력을 가지고 얕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어차피 무식하고 투박한 차림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가난한 사람들의 믿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그들이 어쩌면, 하느님의 아들이지만 가난한 자로 세상에 살던 예수님을 빼닮은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존엄마저도 지탱할 수 없을 만큼 사람들에게 무시당했고, 이방인들에게는 어리석은 자로, 유대인들에게는 추문의 주인공으로 취급 당했습니다. 그런데도 스스럼없이 말씀하시기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나를 보내셨다” 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 처럼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고, 위로하며, 그들에게 새 소망을 줘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난 속에 태어나셨고, 그의 제자들도 가난한 계층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분 자신이 가난한 사람들의 종으로 자처하셨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건성 대하는 것이 아니었고, 그들이 당면한 문제, 슬픔, 고뇌 속으로 파고 드셨습니다.

우리는 종종 봉사하느라고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봉사의 일을 하다가도 기도시간이라고 손을 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 자체가 기도고, 그들의 형편을 살펴 주는 때가 기도시간입니다. 그래서 봉사하면서 기도해야 하고, 기도하면서 봉사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섬기는 것 차제가 하느님의 일이므로, 하느님의 일 속에 있는 한, 그 시간은 하느님께 기도하는 시간인 것입니다. 이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들과 함께 뒹굴고, 그들 속에서 퀘퀘한 사람 냄새를 맡으며, 그들의 흐느끼는 울음과 그들의 한숨소리를 하느님과 함께 듣고 있는 시간이 우리들의 기도시간이기 때문입니다. }}

<기도> 주 하느님, 저희가 노숙자, 수감자, 가난한 사람들을 만날 때, 저희가 예수님을 만난 듯 반가워하게 하옵소서. 그들과 함께 삶을 나눌 때에, 그것이 기도의 시간인 것을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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