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에 무르익는 논밭을 바라보며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시편 147편 7-9, 12-15절 (공동번역)

[7] 야훼께 감사 노래 불러라. 수금 타며 우리 하느님 찬미하여라. [8] 구름으로 하늘 덮어 땅에 비를 내리시고, 이 산에도 풀, 저 산에도 풀, 사람 먹을 곡식 나게 하시며, [9] 짐승들과 울어대는 까마귀 새끼에게 먹이를 마련하시는 분, …

[12] 예루살렘아, 야훼를 기리어라. 시온아, 너의 하느님을 찬양하여라. [13] 네 성문, 빗장으로 잠그시고 성안의 네 백성에게 복을 내리시니, [14] 네 강토 평화로 지켜주시고 밀곡식 그 진미로 너를 배불리신다. [15] 당신 말씀을 땅에 보내시니 그 말씀 순식간에 퍼져 나간다.

* * * *

우리 선조들의 시대에는 음력 8월 보름이면 방방곡곡이 흥겨운 잔치분위기에 휩싸이곤 했습니다. 한 해의 수확을 거두기 시작하는 기쁨 때문이었습니다. 보릿고개의 굶주림, 한여름의 무더위와 가뭄, 때로는 폭우와 범람하는 홍수, 이 모진 고통과 걱정 끝에, 기적처럼 첫 수확을 거두어들이는 농부들의 기쁨을 무엇에다 비기겠습니까!

기쁜 추수철을 맞은 우리 선조들은 먼저 감사할 대상을 찾았습니다. 누군가가 우리를 도운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우리를 돕고 계신 줄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유난히도 밝게 비추는 보름달을 향해서도 감사를 드려보았고, 돌아가신 선조들에게도 감사드려보았고, 농사일을 철저히 도운 하늘에도 감사드려보았습니다.

또 추수 때에는 흩어졌던 가족들이 함께 모였습니다. 먼데 나가 있던 가족들도 돌아와 일손을 더했습니다. 가족이 모였으니, 자연히 시집 장가 가는 이야기로 무성하게 꽃피웠습니다. 추수의 계절은 모든 사람들이 미래를 계획하고 새 소망에 들떴던 때였습니다.

전통적 유목민족이었던 유대인들에게도 이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가나안에 정착하면서 농목생활로 들어갔던 그들은 추수의 계절마다, 온 민족이 야훼 하느님 신앙으로 단합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생활의 주변정리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땅이 식물을 내기 때문에, 땅을 개인의 소유로 하지 못하도록 막았던 것입니다. 하느님의 법 곧 “땅은 아주 팔아 넘기는 것이 아니다. 땅은 내(하느님) 것이다” (레 25:23) 하신 말씀에 철저히 복종했습니다.

비록 땅을 담보로 해서 돈을 빌려 쓴 일이 있었다 하더라도, 정해진 희년을 기해서, 원래의 주인에게로 땅을 돌려 주는 제도를, 하느님께서 명하신 대로 그들이 지켰습니다.

그리하여 땅을 투기의 대상으로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개인이 중요시되는 이념 하에서는 땅을 투기의 대상으로 삼는 일이 허락되었습니다. 땅이 재산을 저축해 두는 최상의 이문이 남는 투자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미처 땅을 사 놓치 못한 가난한 이들은 더욱 가난하게 되고, 땅에 투기를 하는 사람들은 날이 가면 갈수록 재산이 불어났습니다. 말하자면, 땅이나 집을 미처 가지지 못해서 빌린 땅에서 농사를 짓고, 전세로 남의 집에 사는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앞서 투자한 재산가들의 노예로 전락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결국 토지의 사유화를 막는 길이 공정한 사회라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을 전체의 이름으로, 피의 혁명을 통해서라도 달성하려는 주장이 극성을 떨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사는 세상은 서로 화해가 없는 전쟁의 도가니가 되어 있습니다. 하느님의 법, 곧 레위기는 이미 이런 일이 없도록 마련된 법입니다. 토지공개념 곧, 땅에서 노동 없이 거두는 소득은 모두 공유해야 한다는 것, 이 얼마나 복된 이상입니까?

<기도> 주 하느님, 이 세상에 개인주의 이념과 전체주의 이념이 서로 화해하게 하옵소서. 하느님의 법 안에서 서로 화해할 길을 찾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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