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때 불량배가, 수도자가 되어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아씨씨의 프란시스 기념일 (공동번역 개정판)

마태의 복음서 7장 16-21절. [16] “ … 가시나무에서 어떻게 포도를 딸 수 있으며 엉겅퀴에서 어떻게 무화과를 딸 수 있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게 마련이다.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19]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는 모두 찍혀 불에 던져진다. [20] 그러므로 너희는 그 행위를 보아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 [21] “나더러 ‘주님, 주님!’ 하고 부른다고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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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씨의 프란시스(Francis of Assisi, 1181 – 1226) 는 이탈리아의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젊은 시절에는 방종하고 호사스런 나날을 보냈습니다. 동네 불량배들의 두목이었던 그는 군인이 되어 벨기에와의 전쟁에도 참전했습니다. 포로로 붙잡혔지만, 요행으로 풀려났습니다. 그후로 기사가 되어 무사로서 살아 볼 계획을 했습니다.

하지만 중병에 걸려, 투병 중에, 어느 날 산다미아노 교회에서 주님께로부터 “나의 쓰러진 교회를 재건하라”는 말씀을 듣는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프란시스는 이것이 분명히 예수님의 말씀이라 믿었고, 자기가 아버지에게서 상속받을 재산의 일부를 처분하여 산다미아노 교회의 복구에 쓰라고 봉헌했습니다.

이에 분개한 그의 아버지는 프란시스에게서 모든 상속권을 박탈하고, 집에서 쫓아냈습니다. 무일푼으로 쫓겨난 프란시스는 자연히 청빈생활로 들어갔고, 문둥병자들과 함께 기거하면서, 날이 갈수록 경건생활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1210년, 그는 교황 인노센트 III세에게서 순회전도사의 일을 할 자격을 받았고, 동료 11명과 함께 ‘적은 형제회’를 창설하여, 순회전도를 하는 수도단체로 이를 키워 나갔습니다. 얼마 후에 이 공동체는 볼로냐에 센터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청빈, 정결, 복종, 이 세 가지를 규칙으로 정하고, 수도원 속으로 숨어들어가는 종래의 수도회가 아닌, 사회 속에서 가난한 자들의 이웃이 되는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프란시스에게서 많은 기적들이 일어났는데, 문둥병이 낫기도 했고, 산의 짐승들과 공중의 새들까지도 그에게 다가와 그의 말을 경청하게 되었습니다.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그의 앞에서 회개하는 일들이 속출했습니다.

‘적은 형제회’ 는 자신들을 위해 아무 것도 소유하기를 거절했고, 자신의 생활보장을 위해 사제 안수를 받는 일도 거절했습니다. 그들은 다만 하느님의 천진난만한 아들들로 살기를 바라서, 사람들에게 빛을 발하는 깨끗한 생활을 했습니다.

프란시스의 ‘만물송가’는 그 어떤 시인도 노래할 수 없었던, 창조주 하느님을 찬양하는 장엄하고 아름다운 노래였습니다. / 1212년에, 여성 수도 열망자 클라라가 찾아와 수도원 가입을 요청한 것을 계기로, ‘클라라수녀회’를 창설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무슬림 국가들 속에 수도회를 세우기 위해 수 차례 시도했지만, 사라센인들의 강한 반발로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만약 그들이 받아들였더라면, 기독교국가들과 무슬림국가들 사이의 해묵은 갈등이 역사 속에 없을 수도 있을 뻔했습니다. / 1224년에 프란시스의 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던 못자국이 그대로 나타나서, 말년에 그 성흔을 가진 채로 살다가, 1226년 오늘 별세했습니다.

<기도> 주 하느님, 평생을 가난한 예수님을 닮아서 살기를 바랐던 프란시스를 주셨음을 감사드립니다. 그의 예수님 사랑을 본받아, 저희도 예수님을 온 마음과 몸으로 사랑하며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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