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영국 왕, 에드워드의 기념일에 (공동번역 개정판)
시편 9편 1-6절. [1] 야훼여, 이 마음 다 바쳐 감사 드립니다! 몸소 하신 기막힌 일들 남김없이 빠짐없이 전하리이다. [2] 당신 생각에 그저 기쁘고 즐거워 더 없이 높으신 분 그 이름 찬양합니다. [3] 원수들이 뒤돌아 도망치다가 당신 앞에 거꾸러져 죽게 하소서. [4] 공정하신 판관께서 재판석에 앉으시고 나에게 죄없다 판단하셨사옵니다.
[5] 저 민족들을 꺾으시고 악한 자를 멸하시며 그 이름을 영원히 지워주셨습니다. [6] 원수들은 영영 망해 버려 흔적도 없고 그 도시들 또한 잿더미 되어 기억조차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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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로 태어나 적군에 인질로 잡혀가 30년을 살았던 사람의 심정은 어떤 것일까요? 오늘 기념하는 영국 왕 에드워드 (Edward the Confessor, 1002 – 1066)는 이런 생애를 살았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왕 에틀레드 II세였고 그의 어머니는 정략적 결혼을 했던 노르만디(프랑스 북부)의 리처드 공의 여동생 엠마였습니다.
그가 인질로 잡혀 간 것은 열 살 무렵이었습니다. 그는 적국 노르만디에서 온갖 멸시와 천대를 경험했고, 인간의 그악스러움을 맛보았습니다. 인생 사십에 그는 영국으로 돌아와 그 이듬 해 영국왕에 즉위했습니다. 그리고 1045년 갇윈 백작의 딸 에딧과 결혼했습니다.
에드워드는 평화를 사랑하는 임금이었고, 실제로 그의 치세 기간에는 전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에드워드는 남모르는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그의 장인 갇윈이 야심 있는 세도가여서, 평화지상주의를 표방하는 사위를 음양으로 압박하여 전쟁을 획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영국인들이 지금껏 에드워드를 숭앙하고 있는 것은, 그의 경건한 신앙심 때문 만은 아니고, 그의 통치목표를 정의 실현에 두고, 특별히 가난한 자들에게 관대했으며, 나그네들과 약자들을 돌본 그의 유덕을 기리기 때문입니다.
더욱 그의 기이한 생애를 사람들이 경외심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은, 그가 국왕으로서 금욕생활을 바랐다는 사실입니다. 이미 결혼을 한 상태였기 때문에, 왕후 에딧과의 원만한 합의 하에, 평생 부부생활을 하지 않고 한 궁전에서 지냈습니다. 물론 자녀도 없었으며, 다만 이들 부부는 오빠와 여동생처럼 보냈습니다.
에드워드는 그의 생애에 성지순례를 하겠다고 서원했습니다. 하지만 국왕으로 나라를 비운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어서, 종내 이루지 못했습니다. 다만, 테임스 강가에 웨스트민스터 수도원의 가장 큰 건물인 성베드로성당을 착공하여 15년 만에 준공했습니다. 그는 성당이 완성된 후, 1066년에 숨을 거두고, 그가 지은 이 대성당 안에 안장되었습니다.
그가 죽음을 앞두고, 병상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던 때에, 시종들이 그의 곁에서 심하게 통곡하고 있었습니다. 에드워드는 그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발 울지 마시오. 대신, 하느님께 저를 위해 중보의 기도를 드려 주기를 바라오. 제가 하느님 앞에 이를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오. 만일 하느님께서 나를 영접해 주시지 않으면, 나는 모든 것이 파멸로 끝나고 마오.”
그리고 그의 아내, 왕후 에딧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주여, 이 여인을 제 아내로 주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어리석은 저를 섬기느라 오랫동안 고생 많이 했습니다. 그의 말년을 축복하옵소서” 라고 기도하고, 곁에 있던 처남 해롤드에게 “부디, 나중에 이 왕후를 나와 함께 묻어 주오” 라고 부탁했습니다.
<기도> 주 하느님, 비록 세속의 나라 임금으로 살았어도, 겸손히 주를 섬긴 에드워드를 주셔서 믿음의 본을 보이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저희가 부하든 가난하든, 그 환경에서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섬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