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0주일 본문 묵상>
{ 구약 } 신명기 34장 7-12절 [7]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8]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평지에서 모세를 위하여 애곡하는 기간이 끝나도록 모세를 위하여 삼십 일을 애곡하니라. [9]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영이 충만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더라. [10]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11] 여호와께서 그를 애굽 땅에 보내사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온 땅에 모든 이적과 기사와 [12] 모든 큰 권능과 위엄을 행하게 하시매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그것을 행한 자이더라. (개역개정)
{ 성시 } 시편 90편 13-17절 [13]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14]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리를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16] 주께서 행하신 일을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그들의 자손에게 나타내소서 [17]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내리게 하사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우리에게 견고케 하소서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견고케 하소서 (개역개정)
{ 서신 } 데살로니카전서 2장 5-8절 [5] 아시다시피 우리는 지금까지 아첨하는 말을 쓴 적도 없고 속임수로써 탐욕을 부린 일도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이 사실을 잘 알고 계십니다. [6] 우리는 여러분이나 다른 사람들이나 할 것 없이 도대체 사람에게서 영광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7]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권위를 내세울 수도 있었으나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는 마치 자기 자녀를 돌보는 어머니처럼 여러분을 부드럽게 대했습니다. [8] 이렇게 여러분을 극진히 생각하는 마음에서 하느님의 복음을 나누어 줄뿐만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바칠 생각이었습니다. 우리는 그토록 여러분을 사랑했습니다. (공동번역)
{ 복음 } 마태복음 22장 35-40절 [35] 그들 중 한 율법교사가 예수의 속을 떠보려고 [36] “선생님, 율법서에서 어느 계명이 가장 큰 계명입니까?” 하고 물었다. [37]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라.’ [38]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고, [39]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둘째 계명도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40] 이 두 계명이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골자이다.” (공동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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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오늘의 구약 본문은 모세가 별세하던 당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의 별세 장면을 읽으면서,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 정주의 소원을 못 이룬 것을 아쉽게 여깁니다. 그가 꿈을 실현하지 못하고 죽게 된 사연에만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가 하느님께 받은 바 책벌이 너무 가혹하다면서 동정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세가 가나안 땅을 밟고 못 밟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가나안 정주를 눈 앞에 두고, 그의 책임을 끝맺은 것 자체가 얼마나 장한 일이었습니까?
가나안에 못들어간 대신, 영원한 하느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장차 그의 동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 큰 나라를 세우고, 거기서 하느님의 통치를 실현하게 되는 꿈을, 말없이 유언으로 남기고, 그의 수명을 다했습니다. 얼마나 충실한 하느님의 종이었습니까?
( 2 ) 사도 바울의 유언이라면, 디모데후서 4장 6절 “나는 이미 피를 부어서 희생제물이 될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이렇게 시작하는 한 단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의 서신 본문 역시 바울의 유언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자신의 사명을 삼았던 바울 사도의 생애는, 다메섹 도상의 신비로운 경험의 날부터 전 반생을 초지일관했던 그의 꿈이었습니다.
목숨이 붙어 있는 한, 그 모든 날들을 복음 전파를 위해 “나는 살았고” “여러분도 이 꿈을 위해 살게 되시기를” 바란다고 하는 것이 그의 유언이었습니다.
( 3 ) 예수님의 공생애를 통해서 들려 주신 모든 말씀들은 예수님의 유언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하지만, ‘유언’ 이라는 말 자체가, ‘죽는’ 사람이 남기고 가는 말씀이기 때문에, 영원토록 죽지 않으시는 예수님께서 유언을 남기셨다는 것은 어폐가 있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에게는 유언이 있을 수 없습니다. 다만, 장차 세상에 살게 될 모든 인류를 향해서 당부하신 말씀들이 모두 예수님의 유언들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어떤 말씀 보다도 마태복음 25장, 곧 열 처녀의 비유, 달란트의 비유, 양과 염소의 비유, 겟세마네에서 체포되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직전에 세 가지 비유로써 당부하신 말씀이 유언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공생애 3년 동안에 전해 주신 모든 말씀들이 유언이라는 견지에서 오늘의 본문을, 곧 ‘가장 큰 계명’을 언급하신 본문을 대표적 유언으로 택했습니다.
( 4 ) 저와 여러분의 유서에는 무엇이 기록되어야 할까요? 하느님 안에서 우리 각자의 신념이 우리들의 유언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가령 대표적인 유언은, “나는 교회의 중흥과 세계복음화를 위해 살았고, 이 꿈을 지닌 사람들을 양성하는 일에 온 몸과 마음을 기울였다” 고 유언을 남길 수 있다면 이에서 더 훌륭한 유언이 없을 것입니다.
교회력으로 이 해가 딱 한 달 남았습니다. 인생의 황혼이 언젠가 우리 앞에 올 것입니다. 늙은 사람이나 젊은 사람이나, 자신의 유서들을 작성해 보기를 권합니다. ‘내가 죽거들랑, 나를 기억할 때마다 무슨 무슨 일을 위해 마음을 써 달라’ 는 몇 줄의 글이라도, 지금 살아서도, 또 죽어서도, 이웃과 친족들에게 우리를 증명하는 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엄숙히 유언을 써 놓고 사십시다.
<기도> 주 하느님, 저희의 소원, 저희의 삶의 목표를 증언할 수 있는 마음의 정리를 유언장에 담아, 한 장씩 써놓고 살기를 바랍니다. 이 유언대로 저희가 살고, 또 그 사명이 세상에서 이어져 가기를 소원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