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세한 성도들과의 교통을”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제령일에 (공동번역개정판)

{ 외경 } 지혜서 3장 1-4절 [1]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에 있어서, 아무런 고통도 받지 않을 것이다. [2] 미련한 자들의 눈에는 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이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재앙으로 생각될 것이며, [3] 우리 곁을 떠나는 것이 아주 없어져 버리는 것으로 생각되겠지만, 의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4] 사람들 눈에 의인들이 벌을 받은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들은 불멸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 성시 } 시편 23편 [1] 야훼는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누워 놀게 하시고, [2] 물가로 이끌어 쉬게 하시니 [3] 지쳤던 이 몸에 생기가 넘친다. 그 이름 목자이시니, 인도하시는 길, 언제나 곧은 길이요, [4] 나 비록 음산한 죽음의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내 곁에 주님 계시오니 무서울 것 없어라. 막대기와 지팡이로 인도하시니 걱정할 것 없어라. [5] 원수들 보라는 듯 상을 차려주시고, 기름 부어 내 머리에 발라주시니, 내 잔이 넘치옵니다. [6] 한평생 은총과 복에 겨워 사는 이 몸, 영원히 주님 집에 거하리이다.

{ 서신 } 로마서 5장 6-9절 [6] 우리 죄 많은 사람들이 절망에 빠져 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때가 이르러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죽으셨습니다. [7] 옳은 사람을 위해서 죽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혹 착한 사람을 위해서는 죽겠다고 나설 사람이 더러 있을지 모릅니다. [8]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죄 많은 인간을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당신의 사랑을 확실히 보여주셨습니다. [9] 우리가 이제 그리스도의 피로써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얻었으니 그리스도의 덕분으로 하느님의 진노에서 벗어나게 될 것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 복음 } 요한복음 5장 21-25절 [21]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듯이 아들도 살리고 싶은 사람들은 살릴 것이다. [22] 또한 아버지께서는 친히 아무도 심판하지 않으시고 그 권한을 모두 아들에게 맡기셔서 [23] 모든 사람이 아버지를 존경하듯이 아들도 존경하게 하셨다. 아들을 존경하지 않는 사람은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도 존경하지 않는다.” [24] “정말 잘 들어두어라.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그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미 죽음의 세계에서 벗어나 생명의 세계로 들어섰다. [25] 정말 잘 들어두어라. 때가 오면 죽은 이들이 하느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것이며 그 음성을 들은 이들은 살아날 터인데 바로 지금이 그 때이다.”

* * * *

교회는 오늘을 ‘모든 별세한 신자들을 위하여’ 감사성찬례를 드리는 날로 지킵니다. 이 날이 주일이면 3일에 지킵니다.

교회가 성인으로 추대한 이들을 위해서는 정한 기념일에 그들을 기억하는 예배를 드리지만, 일반신자들의 별세일을 따로 정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위해서도 별도의 기념일을 정한 것은 주후 919년 프랑스 글루니에 있는 베네딕트수도원에서부터였습니다. 그 이래로 점차 전 세계의 관습이 되어, 오늘은 ‘제령일’이라 부르며, 모든 별세한 신자들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성공회는 어느 감사성찬례에서든지 별세한 신자들을 기억하고 기도하는 기도문이 작성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제령일에는 이 날에 기억하려는 신자들의 모든 이름을 기도에서 호명하는 관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별세한 신자들과의 ‘성도의 교통’이 가능한가, 하는 문제는 아직 신학적 토론의 여지가 있다고 보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예전적 교회들은 성령의 도우심을 입어 별세한 신자들과의 교통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기도> 주여, 별세한 이들을 평안히 쉬게 하시며, 영원한 빛으로 비춰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 지난 10월 29일 이래로 본 말씀묵상의 발행시간이 들쭉날쭉한 점을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베트남 단기선교로 와 있어서, 오는 11월 12일까지는 불편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