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현대 순교자들의 기념일에 (공동번역개정판)
{ 서신 } 로마서 9장 2-5절 [2] 나에게는 큰 슬픔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으로 끊임없이 번민하고 있습니다. [3] 나는 혈육을 같이하는 내 동족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갈지라도 조금도 한이 없겠습니다. [4] 나의 동족은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이 있고 하느님을 모시는 영광이 있고 하느님과 맺은 계약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율법이 있고 참된 예배가 있고 하느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5] 그들은 저 훌륭한 선조들의 후손들이며 그리스도도 인성으로 말하면 그들에게서 나셨습니다.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느님을 영원토록 찬양합시다. 아멘.
{ 복음 } 루가복음 14장 1-6절 [1] 어느 안식일에 예수께서 바리사이파의 한 지도자 집에 들어가 음식을 잡수시게 되었는데 사람들이 예수를 지켜보고 있었다. [2] 그 때 마침 예수 앞에는 수종병자 한 사람이 있었다. [3] 예수께서는 율법교사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항하여 “안식일에 병을 고쳐주는 일이 법에 어긋나느냐? 어긋나지 않느냐?” 하고 물으셨다. [4] 그들은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병자의 손을 붙잡으시고 고쳐서 돌려보내신 다음 [5] 그들에게 다시 물으셨다. “너희는 자기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다면 안식일이라고 하여 당장 구해 내지 않고 내버려두겠느냐? [6] 그들은 이 말씀에 아무 대답도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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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20세기 교회는,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과 식민통치로 인한 수많은 살상, 그리고 민족주의, 인종말살 등으로 곳곳에서 무고한 살육이 자행되는 가운데, 그 틈바구니에서 기독교인으로 믿음을 증거하기 위하여 목숨을 바친 수많은 순교자들이 발생하였습니다. 아시아의 여러 국가들과 아프리카에서, 그리고 구미 대륙에서 이름없이 숨져간 많은 순교자들을 오늘 기념할 것을 교회가 제안했습니다.
여기에 디트리히 본회퍼의 ‘제자 됨의 비용’ 이란 제목의 글을 요약해 드립니다.
“‘싸구려 은혜’ 라는 것이 우리들의 교회를 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고귀한 은혜를 보존하기 위하여 투쟁할 수 밖에 없습니다. 값싼 은혜가 많은 매장에서 헐값으로 판매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싸구려 성사, 싸구려 사죄, 싸구려 위로가 팔리고 있습니다. … 무엇이 주님의 은혜인지도 모른채, 자신의 무슨 죄가 사함을 받게 되었는지도 분명히 규명되지 않은채, 주님께서 나의 무슨 죄를 사하시려고 죄인의 규정을 받았고 십자가에 오르셨는지가 규명되지도 않은채, 성사는 집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
회개가 없이 죄사함의 은혜를 선포해서는 안 됩니다. 성도의 바른 삶으로 인도되지 않은채 성사가 진행되어서는 안 됩니다. 올바른 신앙고백 없이 성사가 베풀어져서는 안 됩니다. 주님 앞에서 똑바로 신앙을 고백한 이후에라야, 교회가 사죄의 선언을 해야 합니다. 인간이 되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몸으로 친히 지셨던 십자가의 수난이 있었기에, 이 세상 속에 은혜가 존재했습니다. 헐값으로 고귀한 은혜를 나누지 마십시오. 십자가의 구원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구원의 은혜’의 비싼 비용을 다 지불하라 해도, 자신의 가장 값진 것, 곧 목숨을 내놓고서라도 차지하려 할 것입니다.”
( 2 ) 사도 바울이,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갈지라도” 즉 구원을 받지 못하여 영벌에 들어가게 될지라도, 동족의 구원을 위해서라면, 자신은 구원을 포기할 수도 있겠다고 말합니다. 이 얼마나, 예수님 앞에서 해서는 안 될 말입니까? 그러나, 사도 바울은 동족의 구원을 열렬히 바라는 마음에서, 이런 ‘어거지 말’을 내뱉고 있습니다. 그 심정을 이해하면서 이 말씀을 되새깁시다.
우리들은 우리의 가족이나 우리의 이웃, 넓게는 우리의 동족들이 복음을 들어 구원을 받는 일에 얼마나 열심이 있고 정성이 있습니까? 저는 이 일에 당당할 수가 없음을 고백합니다.
지금 외국에 나와 여기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있지만, 진정 이 선교사 분들이 그들의 청춘을 다 바쳐, 그 비싼 값을 치르고, 구원 받을 영혼들을 한 분 씩 얻고 계심을 보면서, 제가 살고 있는 곳에서, 동족을 위하여 얼마나 제가 정성을 바치고 있는가를 생각하며 반성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갈지라도, 내 동족이 구원 받는 것을 보고 싶다” 고 안타깝게 기원하던 그 기원은, 후대에 사는 우리들도 우리 동족들을 향한 ‘복음의 빚을 인식하고 살라’ 하신 말씀일 것입니다.
<기도> 주 하느님, 값비싼 구원의 은혜를, 저희의 가족과, 이웃들과 동족에게도 전할 성의를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