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켐프 여사와 죠지 포브스의 기념일 (공동번역개정판)
{ 서신 } 로마서 14장 7-12절. [7] 우리들 가운데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사는 사람도 없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 죽는 사람도 없습니다. [8]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해서 살고 죽더라도 주님을 위해서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도 주님의 것이고 죽어도 주님의 것입니다. [9]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의 주님도 되시고 산 자의 주님도 되시기 위해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10]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형제를 심판할 수 있으며 또 멸시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다 하느님의 심판대 앞에 설 사람이 아닙니까? [11] 성서에도, “정녕 나는 모든 무릎을 내 앞에 꿇게 하고, 모든 입이 나를 하느님으로 찬미하게 하리라” 한 주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12] 그 때에 우리는 각각 자기 일을 하느님께 사실대로 아뢰게 될 것입니다.
{ 복음 } 루가복음서 15장 1-7절. [1]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의 말씀을 들으려고 모여들었다. [2] 이것을 본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저 사람은 죄인들을 환영하고 그들과 함께 음식까지 나누고 있구나!” 하며 못마땅해 하였다. [3]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셨다. [4] “너희 가운데 누가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 한 마리를 잃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아흔아홉 마리는 들판에 그대로 둔 채 잃은 양을 찾아 헤매지 않겠느냐? [5] 그러다가 찾게 되면 기뻐서 양을 어깨에 메고 [6] 집으로 돌아와 친구들과 이웃을 불러모으고 ‘자, 같이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양을 찾았습니다’ 하며 좋아할 것이다. [7] 잘 들어두어라. 이와 같이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는 것을 하늘에서는 더 기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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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거리 켐프 여사, Margery Kempe, 복음전도자, ? – 1440 >> 켐프 여사는 14세기에 영국 노폭 지방의 린이라는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여러 차례 영적인 환상을 보았고, 그 환상 가운데는 예수님의 가족을 만난 일도 있었습니다. 그는 별세하신 성인들과 더불어 대화를 나눈 일도 있었으며, 이로 인해서 교회 안에, 진위를 가리자는 물의도 일었습니다. 아래에 그의 일화 한 편을 소개하려 합니다.
켐프 여사가 한 번은 요크 대주교를 만나러 성당으로 갔습니다. 켐프 여사는 교회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눈물이 샘솟듯했습니다. 대주교가 성당에 들어서면서 그녀를 향해서 말했습니다. ‘당신은 왜 흰 색 옷을 입었소? 당신은 독신이요?’ 켐프 여사는 <아니요. 저는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울고 계시오?’ <대주교님, 대주교님도 언젠가는 저처럼 울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이 때 대주교는 ‘교회신조’ 몇 번을 그녀에게 말해 보라고 시켰습니다. 켐프 여사는 신조를 막힘없이 줄줄 외웠습니다. 대주교는 별다른 지적할 사항이 없다며, 곁에 있던 성직자에게 ‘별 문제가 없군’ 했습니다. 그러자 곁의 성직자는 ‘그렇지만, 이 사람이 우리 관내에서 자꾸 떠들고 다니면, 교회가 조용하지 못하니, 발언을 금할 것을 명하는 것이.. 성경에도 여자는 교회에서 말하지 말라 했지요?’ 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켐프 여사는 대주교에게 <예, 대주교님. 저도 많은 사람들에게서 나쁜 악귀가 씌운 사람이라고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을 압니다. 그래도 저는 설교단에 올라가서 남을 비판하지는 않습니다. 악한 말을 하지는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대주교님, 사람들이 대주교님을 비난하고 있는 내용이 사실이라면, 대주교님께서는 태도를 고치지 않는 한,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하십니다.>
이 때 대주교는 큰소리로 켐프 여사에게 ‘사람들이 나를 뭐라고 비난하오? 당신은 앞으로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침묵한다고 맹세하시오.’ 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켐프 여사는 <교황과 주교들이 교회에서 진실이 유포되지 못하도록, 서품권과 치리권을 사용하고 있으니, 성직자가 아닌 저라도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 죠지 헤이 포브스, George Hay Forbes, 사제, 1821 – 1875 >> 포브스 사제는 소아마비로 어렸을 적부터 평생 발을 절며 살았습니다. 명민한 그를 치료하기 위하여 부모들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포브스는 신학수업을 남달리 잘 받아 석학이 되어 있었지만, 주교가 그에게 성직안수를 거절했습니다. 발을 전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그가 좌절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인쇄소를 경영하면서, 1848년부터 번티스란드 지방의 선교를 위해 자급으로 봉사했습니다.
수 년이 지나, 교회는 그에게 사제 서품을 했고, 교회당도 없고 목회가 힘든 번티스란드의 한 지방교회를 맡겼습니다. 그는 시청 공간을 사용하여 예배를 드렸고, 헌신적으로 목회하면서, 교회도 발전했습니다. 그는 후일 시장 직에 선출되었습니다. 그는 여생에 경건한 목회자로 별세하던 날까지 그 교회를 지켰습니다.
<기도> 주 하느님, 저희들이 무슨 이유로든 사람을 차별하는 악습을 버리게 하옵소서. 비록 아무런 직급이 없는 이가 발언을 하더라도, 올바른 건의를 하면 성직자들과 교회들이 이를 수용하는 성의를 갖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