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 저희를 구원하소서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공동번역개정판)

{ 성경외전 } 마카베오상 1장 41-43, 54-57, 62-64절 [41] 그 후 안티오쿠스 왕은 온 왕국에 영을 내려 모든 사람은 자기 관습을 버리고 한 국민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42] 이방인들은 모두 왕의 명령에 순종했고 [43]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도 왕의 종교를 받아들여 안식일을 더럽히고 우상에게 제물을 바쳤다. … [54] 백사십오년 기슬레우월 십오일에 안티오쿠스 왕은 번제 제단 위에 가증스러운 파멸의 우상을 세웠다. 그러자 사람들은 유다의 근방 여러 도시에 이교 제단을 세우고 [55] 집 대문 앞에나 거리에서 향을 피웠다. [56] 율법서는 발견되는 대로 찢어 불살라 버렸다. [57] 율법서를 가지고 있다가 들키거나 율법을 지키거나 하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왕명에 의해서 사형을 당하였다. … [62] 그러나 이에 꺾이지 않고 부정한 것을 먹지 않기로 굳게 결심한 이스라엘 사람들도 많았다. [63] 그들은 부정한 음식을 먹어서 몸을 더럽히거나 거룩한 계약을 모독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달게 받기로 결심하였고, 사실 그들은 그렇게 죽어갔다. [64] 크고 무서운 하느님의 진노가 이스라엘 위에 내린 것이다.

{ 성시 } 시편 79편 1-5절 [1] 하느님, 이방인들이 당신의 땅을 침입하여 당신의 성전을 더럽히고 예루살렘을 폐허로 만들었습니다. [2] 당신 종들의 시체를 공중의 새들에게 먹이로 주고, 당신 백성의 살을 들짐승에게 주었습니다. [3] 예루살렘 주변이 피바다가 되었지만 묻어줄 사람 아무도 없었습니다. [4] 우리는 이웃들에게서 모욕을 당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조롱거리, 웃음감이 되었습니다. [5] 야훼여, 언제까지이옵니까? 당신의 분노, 끝까지 아니 푸시렵니까? 그 노기를 영원히 불태우시렵니까?

{ 복음 } 루가복음서 18장 39-43절 [39] 앞서가던 사람들이 그를 꾸짖으며, 떠들지 말라고 일렀으나, 그는 더욱 큰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40] 예수께서는 걸음을 멈추시고, 그 소경을 데려오라고 하셨다. 소경이 가까이 오자, [41]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셨다. “주님, 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 하고 그가 대답하자, [42] 예수께서는 “자, 눈을 떠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하고 말씀하셨다. [43] 그러자 그 소경은 곧 보게 되어, 하느님께 감사하며 예수를 따랐다. 이것을 본 사람들은 모두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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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마카베오상 1장 41절에 나오는 ‘안티오쿠스’는, 헬라가 유다를 지배하고 있을 때, 침략군의 왕이었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재위 BC 175-163) 임금이었습니다. 그는 스스로 ‘성육신한 제우스’라 칭했고, ‘구원자’임을 자처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유대인의 전통적 번제의 제사를 못드리게 했고, 성소를 “멸망의 가증한 것”으로 더럽혔습니다.(단 11:31)

그리하여 많은 유대인들이 신앙의 지조를 지키기 위해 차라리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무서운 고문과 학살이 자행되었습니다. 이 때 유대인들의 조직적인 봉기가 일어났는데 이것이 마카베오 상하에 기록된 ‘마카베오혁명’이었습니다.

마카베오혁명의 여파로 유대인 사회에 뚜렷한 몇 가지 신앙운동이 생겨났습니다.

첫째는 헬라 영향에 물들기를 거부했던 이들의 경건운동이었는데, 철저한 분리주의 운동이었습니다. 이들이 바리사이파의 조상이었고, 정치적 자유보다는 신앙적 자유에 관심이 많았던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둘째는 신앙적 자유에 만족할 줄 모르는 무리들로, 민족적 독립을 의도했던 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종류의 정치적 음모에 가담했고, 이른 바 ‘사두가이파’가 바로 그들입니다.

세째는 마카베오식 투쟁을 계속하는 것 만이 유대를 회복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신념으로 암약하던 극단주의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을 ‘젤롯당’(열심당)이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혁명적 선동가들이었으며, 어떤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로마로부터 자유를 얻기 위해 싸우기를 바랐습니다.

이 세 가지 사회 현상이,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 복음과 맞서는 세력이었던 것을 우리는 압니다.

저는 시사평론가도 아니고, 또 그럴 수 있는 능력도 없습니다. 혹시라도 제가 어떤 정치적 입장에 서는 말을 하게 되면, 제가 전하고 싶은 ‘복음의 묵상’이 힘을 잃을까 봐 조심합니다. 여러분께서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떻든, 우리가 사는 시대는 정치적으로 평탄치 않은 시대입니다. ‘정치만능’ 사고방식을 가진 이들은 이것이 나라가 사는 길이다, 저것이 세계평화의 길이다 라고 주장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말씀은, 누구나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것 만이, 비록 오래 걸리더라도, 평화의 첩경이라 하십니다. 너와 내가 다 하느님께로 돌아갈 때에 우리 속에 참 평화가 올 것이고, 구원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죽음의 위협이 아무리 실제가 되었더라도, 우리는 하느님의 보좌 앞으로만 정진합시다.

<기도> 주 하느님, 세상이 아무리 소란하고, 흉악한 세력이 세상을 어지럽히더라도, 우리는 하느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생활에 정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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