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공동번역개정판)
{ 성시 } 시편 124편 1-8절 [1] 이스라엘이 하는 말, “야훼께서 우리 편이 아니셨더면, [2] 원수들이 우리를 치러 일어났을 때, 야훼께서 우리 편이 아니셨더면, [3] 그들은 달려들어 살기등등, 산 채로 우리를 집어삼켰으리라. [4] 거센 물살에 우리는 휩쓸리고, 마침내 물에 빠져 죽고 말았으리라. [5] 거품 뿜는 물결에 빠져 죽고 말았으리라.” [6] 야훼를 찬미하여라. 우리를 원수들에게 먹히지 않게 하셨다. [7] 새 잡는 그물에서 참새를 구하듯이 우리의 목숨을 건져내셨다. [8] 그물은 찢어지고 우리는 살아났다.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 야훼의 이름밖에는 우리의 구원이 없구나.
{ 복음 } 루가복음서 20장 37-38절 [37] 모세도 가시덤불 이야기에서 주님을 가리켜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 이라고 불렀다. 이것으로 모세는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38]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 죽은 자의 하느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의 하느님이시라는 뜻이다. 하느님 앞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살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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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우리들이 매일 드리는 주기도문 속에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옵시며 악에서 구하소서” 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진정 간절히 빌어야 하는 기도문구입니다.
우리가 유혹에 빠지거나, 악에 걸려들었다가는 어떻게 될는지 잘 알지 않습니까? 희망이 없지요. 하느님을 떠나게 되고 맙니다.
저는 “새 잡는 그물에서 참새를 구하듯이 우리의 목숨을 건져내셨다.”(개역개정 – ‘우리의 영혼이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난 새같이 되었나니 올무가 끊어지므로 우리가 벗어났도다,’ 시 124:7) 요절을 가지고 만든 어린이찬송을 즐겨 부릅니다. ‘오, 우리 영혼이 벗어났도다, 사냥꾼의 올무에서 새같이..’ 이렇게 부르는 찬송입니다.
눈 앞에 어른거리는 한 영상을 봅니다. 몸둥이가 큰 산 짐승이 사냥꾼이 놓은 덫에 걸려 몸부림을 치고, 애쓰다 못해 살갗이 찢어져 피가 흘러도 덫을 벗어나지 못해 신음하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사탄이 장치해 놓은 죄의 올무에 얽혀든 인간의 모습이 이와 똑같습니다.
같은 시편 124편 8절에 보면, “야훼 이름 밖에는 우리의 구원은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능력의 하느님, 은혜의 하느님께서, 최종적으로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신 것이, 십자가였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보혈 만이 우리를 죄의 속박에서, 사탄이 놓은 사망의 올무에서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으십니다. 할렐루야!!
( 2 ) 오늘의 마태복음 본문(37절)에 보면, 하느님의 호칭 중 가장 긴 호칭, 즉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는 호칭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이 호칭을 해석하시기를, 이것은 “살아 있는 자의 하느님” 이라는 뜻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미 아브라함도 죽었고. 이사악도 죽었고, 야곱도 죽었습니다. 그런데 ‘살아 있는 자의 하느님’이시라는 뜻으로,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으로 호칭해 드린다니요?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육신이 살아 있는 자라는 뜻이 아니라, 영혼이 살아 있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아브라함의 영혼도 때때로 하느님을 믿는 사람답지 않았던 적이 있었고, 야곱의 일생을 보아도 그의 영혼이 죽어 있는 자 같이 보였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영혼은 다시 깨어 나서, 하느님 앞에서 살기를 힘썼던 믿음의 족장들이었습니다. 하느님 없이는 살 수가 없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영혼이 살아 있는 사람들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때로는 죽은 자 같았을지라도, 흑암의 세력에서 벗어나서, 끝끝내 빛의 아들들로, 영혼이 살아 있는 하느님의 자녀로서 살도록 은혜 베푸소서.
( 3 ) 오늘은, 우리들이 사랑하는 성가 198장 (찬송가 147장) “주께서 달린 십자가 나 항상 생각할 때에 세상에 속한 욕심을 헛된 줄 알고 버리네” 이 성가의 작사자인 아이작크 왓츠 목사(Isaac Watts, 1674-1748)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가 어려서부터 신앙적으로 많은 갈등을 겪으면서 살았고, 대학공부를 마치고 38세 때까지 목회에 전념했지만, 신병으로 목회를 손 놓고, 그의 인생 후반 36년 동안은 고향인 뉴잉턴에서 많은 찬송시를 쓰면서 보냈습니다.
영어권에서 ‘신도들이 가장 많이 부르는 찬송’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곡이 바로 이 찬송이었습니다. 그만큼 그의 신앙적 감동은 지금도 살아서,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하느님께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기도> 주 하느님, 우리들의 영혼을 하느님 앞에서 살아 있는 영혼이 되게 하시며, 비록 방황하며 살았을지라도 마침내 하느님께로 돌아오는 ‘막판 뒤집기’의 역사를 이루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