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공동번역개정판)
요한묵시록 2장 18-25절. [18] 티아디라 교회의 천사에게 이 글을 써서 보내어라. 불꽃 같은 눈과 놋쇠 같은 발을 가지신 분, 곧 하느님의 아들이 말씀하신다. [19] ‘나는 네가 한 일들을 잘 알고 있고 네 사랑과 믿음과 봉사와 인내를 알고 있다. 또 네가 처음보다 나중에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도 나는 알고 있다. [20] 그러나 너에게 나무랄 것이 있다. 너는 이세벨이라는 여자를 용납하고 있다. 그 여자는 예언자로 자처하며 내 종들을 잘못 가르쳐서 미혹하게 했고 음란한 짓을 하게 했으며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을 먹게 하였다. [21] 나는 그 여자에게 뉘우칠 시간을 주었지만 그 여자는 자기의 음행을 뉘우치려고 하지 않는다.
[22] 이제 나는 그 여자를 고통의 침상에 던지겠다. 그리고 그 여자와 간음하는 자들도 뉘우치지 않고 그와 같은 음란한 행위를 계속한다면 큰 환난 속에 던져버리겠다. [23] 그리고 그 여자의 자녀들을 죽여버리겠다. 그러면 모든 교회는 내가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꿰뚫어 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너희가 각각 행한 대로 갚아주겠다. [24] 그러나 티아디라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그 여자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들, 곧 사탄의 비밀을 배우지 않은 나머지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너희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겠으니 [25] 다만 내가 올 때까지 너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단단히 간직하고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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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20절에 나오는 ‘이세벨’이 누구를 뜻하는지가 핵심입니다. 가령 열왕기상 16장 29절 이하에 나오는 불신앙의 임금인 아합의 처, 바알을 섬기는 사악한 여자 이세벨의 이름을 빌려, 별명으로 이세벨이라 칭하던 어떤 여인이 티아디라 교회에 있었는가, 또는, 여자가 아니더라도, 북왕국 이스라엘을 망하게 했던 이세벨 처럼, 티아디라 교회에 불신과 죄를 조장하던 어떤 개인이나 무리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세벨’ 이라는 이름으로 칭했던 자의 특징을 본문이 설명하기를 1) 스스로 예언자라고 사칭하였고(본문 20절), 2) 사람들에게 잘못 가르쳐 미혹하게 하고, 음란죄를 저지르게 하였으며(20절), 3) 우상에게 바쳤던 음식을 먹게 하였고(20절), 4) 뉘우칠 기회까지 주었건만 뉘우치기는 커녕 악행을 계속했다고(21절) 했습니다.
이 경고의 말씀을 현대교회에 비추어 오늘의 표현으로 말한다면, 1) 교회 안에 ‘맘모니즘’(물질주의) 또는 ‘바알리즘’(‘부유와 소비가 덕’이라는 가치관을 숭상하는 풍조)을 가르치는 자들, 2) 하느님을 숭앙하기보다 웰비잉을 중요시하는 인본주의 가치관을 가르치는 자들, 3) 십자가 복음을 가르치는 데에는 관심이 없고, 오히려 그 옛날의 율법주의 신앙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신도들을 그릇 인도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묵상합니다. 제가 출석하고 있는 성공회는 티아디라에서 설치고 있었던 ‘이세벨의 무리’가 주장하고 있지는 않은가? 또 하느님의 말씀보다 ‘이세벨의 가르침’(세속적 가치를 가르치는 일, 현실주의적 교훈들)에 신도들이 더 관심이 있지는 않은가?
심지어 성직자가 반기독교적인 인사들의 어록을 뒤져가며, 그들의 그릇된 가치관이 마치 큰 권위를 가지는 것 마냥, 설교단에서 언급하고 있는 현상을 보면서, 진정 개탄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세벨의 음행’(본문 21-22절)은 ‘육체적 음행’으로도 볼 수 있겠고, ‘영적 음행’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영적 음행은 우상 숭배를 말하며, 이것은 성서의 모세오경은 물론 성서 각권마다 누누이 금하고 있습니다.
티아디라 교회가 주님의 엄정한 경고를 받았듯이, 우리들이 사랑하는 교회들도 때때로 티아디라가 받았던 교훈을 스스로에게 적용하면서 바른 길을 가는 교회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주 하느님, 티아디라 교회에게 주신 교훈으로 저희 자신을 살피게 해 주시는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십자가 복음보다 우상 숭배와, 현세주의로, 쾌락주의로 신도들을 유혹하는 일이 저희의 교회에는 없도록, 이세벨을 경계할 수 있도록 항상 깨어 있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