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토마스 베켓 주교 기념일 (신복룡 신구약성경)
{ 서신 } 요한의 편지 <1> 2장 3-11절. [3]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 그것이 곧 우리가 그분을 알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4] “나는 그분을 안다.”고 말하면서 그분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무리는 거짓말쟁이고, 그는 진리와 동떨어진 사람입니다. [5] 그러나 누구든지 그분의 말씀을 지키면, 그 사람 안에서 참으로 하나님 사랑이 완성되며, 그것으로 우리가 그분 안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6] 그분 안에 머무른다고 말하는 사람은 자신도 그리스도께서 살아가신 것처럼 그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7]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써 보내는 것은 새 계명이 아니라, 여러분이 처음부터 지녀 온 옛 계명입니다. 이 옛 계명은 여러분이 들은 그 말씀입니다. [8] 그러면서도 내가 여러분에게 써 보내는 것은 새 계명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와 여러분에게도 참된 사실입니다. 어둠이 지나가고 이미 참된 빛이 비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9] 빛 속에 있다고 말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아직도 어둠 속에 있는 무리입니다. [10] 자기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빛 속에 머무르며, 그에게는 걸림돌이 없습니다.[11] 그러나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무리는 어둠 속에 있습니다. 그는 어둠 속에서 살면서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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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요한은 사랑의 계명이 예수님께서 주신 단 하나의 계명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요 13:34) 그래서 공관복음(마태, 마가, 누가)이 모두 수록한 ‘가장 큰 계명’에 관한 전승(마 22:34 이하, 막 12:28 이하, 눅 10:25 이하)을 꼭 싣고 싶었는데도, 그것을 대신해서 ‘예수님의 새 계명’(요 13:34)을 자기의 복음서에 수록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요한의 문서들에 나타난 일관된 신념은, 사랑이 계명의 완성이며, 사랑의 계명을 본보이신 분이 예수님이고, 예수님을 믿어 빛의 자녀가 된 사람들임을 나타내는 증거는 사랑의 삶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세 개의 짧은 단락으로 서술해 놓은 요한의 글이 바로 위에 실린 본문입니다.
( 2 ) 콩고의 오고에 강가에서 일생을 의료선교사로 보낸 알버트 슈바이처에게 어떤 기자가 이단에 관해서 물었을 적에 그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누가 이단이겠습니까?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이단만큼 중대한 이단은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슈바이처의 이 말은 진리일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가장 크게 벗어난 사람들이 바로 그들, 곧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자들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 3 ) 오늘은 토마스 베켓 주교 ( Thomas Becket, Archbishop of Canterbury, 1118 – 1170 ) 의 기념일입니다.
저에게도 기회가 주어져서, 그가 살해당한 대성당을 방문한 일이 있었습니다. 고요한 여름날,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어 대리석마저 움푹 패인 성당을 조용히 제단 앞까지 걸어들어갔습니다. 그 날은 사람들이 저 말고는 없었습니다.
제 귀에는 저 바깥에서 들려오는 기사들의 말 발굽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습니다. 점점 그 소리가 커지며, 마침내 말을 탄 채로 기사 네 명이, 제가 들어왔던 통로로 들어왔을 터이고, 생추어리(성소) 한 복판에 놓인 제대 곁으로 피신하고 있던 토마스 대주교를 향하여 말을 탄 채로 한 기사가 칼을 휘두르자, 대주교는 칼을 맞고, 제대 곁으로 쓰러집니다. 그러자 다른 기사들이 달려들어 대주교의 몸을 칼과 창으로 난자했습니다. 만신창이가 된 대주교는 운명하고, 네 명의 기사들은 말을 돌려 대성당에서 빠져 나갑니다. 1170년 오늘 있었던 일입니다.
이런 사건이 있었던 것은 당시의 영국의 국왕 헨리2세가, 교회가 출교처분했던 몇 사람의 책벌을 특별사면해서 복권시켜 줄 것을 요청했지만, 토마스 대주교가 “국왕은 나라 일을 하고, 교회 일에 관여하지 말라.” 하며 거절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헨리2세와 베케트는 어렸을 때부터 친구사이였습니다. 그러나 헨리가 국왕이 되고 난 후에는 베케트가 자기 말을 순종하지 않는다고 불쾌하게 생각했습니다. 베케트는 하나님의 교회의 일을 맡고서부터 사적인 친분이 교회를 그르칠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기도> 주 하나님, 국왕의 자리가 하나님의 상위에 있을 수 없음을 믿기 때문에 목숨을 바쳐 교회의 권위를 지킨 토마스 대주교를 주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저희도 교회를 사랑하고, 하나님의 교회의 권위를 받들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