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신복룡 신구약성경)
{ 서신 } 요한의 편지(1) 3장 1-6절 [1]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시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라 부르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는 까닭은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2]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3] 그분께 이러한 희망을 두는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자신도 순결하게 합니다. [4] 죄악을 저지르는 무리는 모두 불법을 자행하는 무리입니다. 죄악은 곧 불법입니다. [5] 여러분도 알다시피, 그분은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셨습니다. 그분 안에는 죄가 없습니다. [6] 그분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아무도 죄를 짓지 않습니다. 죄를 짓는 무리는 모두 그분을 뵙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 사람입니다.
{ 복음 } 요한 복음서 1장 29-34절 [29] 이튿날 요한은 예수께서 자기 쪽으로 오시는 것을 보고 말했다. “보시오,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십니다. [30] 저분은, ‘내 뒤에 한 분이 오시는데,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고 내가 지난날에 말한 분이십니다. [31] 나도 저분을 알지 못했습니다.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준 것은, 저분께서 이스라엘에 알려지시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32 요한은 또 증언했다. “나는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저분 위에 머무르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33] 나도 저분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물로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그분께서 나에게 일러주셨습니다. ‘성령이 내려와 어떤 분 위에 머무르는 것을 그대가 볼 터인데, 바로 그분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시오.’ [34] 과연 나는 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분이 하나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내가 증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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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세례 요한은 자신이 어떤 사명을 지니고 세상에 사는지 알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사명을 알고 세상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복되겠습니까? 하지만 사명을 알려 주어도, 그것을 자신의 사명이라고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그 사명을 위해 평생을 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세례 요한은 그의 아버지 즈카르야가 성전에서 하나님과 조우했던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룩 1:5-25) 그 이야기에서 자신의 이름인 ‘요한’(뜻 – ‘하나님은 자비로우시다’)이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인 사실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의 사명이 “ ‘주님의 길을 곧게 하여라.’ 하며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이사야 40:3) 라는 사실을, 이사야의 예언에 의해서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광야에서 살았고, 주님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요단강가에서 ‘회개의 세례’ 운동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 2 ) 세례 요한의 생애가 얼마나 행복했던가를 생각해 봅시다.
인간의 행복을 출세하고, 장가(시집) 가고, 부를 누리고, 사람들에게 칭송 받으며 사는 것으로 계산한다면, 세례 요한의 생애는 불행한 일생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광야에서 쓸쓸한 생활을 했고, 독신이었으며, 지닌 것은 고작 그가 입고 있던 낙타털옷이 전부였고, 헤롯왕의 칼날에 목이 베여 죽임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충실한 일꾼으로 살았고, 예수님께서도 그를 칭찬하기를 “여인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소.”(마 11:11) 라고 추켜세웠습니다.
( 3 ) 세례 요한 처럼 살다간 이들이 많았습니다. — ‘모리스 윌리엄스’를 오늘 기념합니다.
모리스 윌리엄스( Morris Williams, 사제, 시인, 1809 – 1874 ) 는 그의 작가명인 ‘Nicander’로 더 알려져 있습니다. 웨일즈 북서부 캐나폰 지방에서 태어나, 목공 일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그의 머리가 명석한 것이 드러나면서, King’s School 과 옥스포드의 Jesus College 에서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1835년 사제 서품을 받고, 교회 일을 하면서, 공도문을 웨일즈어 판으로 출판하는 일을 했습니다. 1847년에는 설교집을 출판하여 널리 배포하고, 소책자운동을 벌여 평신도들의 신학 이해를 증진시키는 일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그의 시 작업이 널리 유포되면서, 1843년 이래 그의 신앙시가 성가로 널리 불리게 되었습니다. <성체성사후 성가> “성도의 대열에 섞이어 / 죄 많은 이 몸 주님의 제단에 나아가오니 / 저를 위해 부수어진 주님의 몸을 제게도 베푸사 / 이 약한 몸에 힘을 주시고 / 내 응어리진 마음이 양초처럼 녹아지게 하소서. // 찬송하올 예수님의 십자가 / 거기서 흘리신 보혈이 / 저의 고집스런 마음을 풀어내사 / 주님의 한 마디가 제게 평화와 생명이 되어 / 내 영혼을 무덤에서 영원으로 인도하소서.”
<기도> 주 하나님, 저희 생명을 무엇을 위해 세상에 주셨는지를 깨닫게 하시고, 저희 생애를 통하여 하나님 홀로 영광 받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