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현 9, 스스로 ‘신랑’ ‘새포도주’에 비유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신복룡 신구약성경)

마르코복음서 2장 18-22절 [18] 요한의 제자들과 파리사이들이 단식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물었다. “요한의 제자들과 파리사이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19]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소?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 없소. [20]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오. 그 때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오. [21]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면 헌 옷에 기워 댄 새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집니다. [22]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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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스스로 ‘신랑’이라는 별명과 ‘새포도주’ 라는 별명으로 호칭한 것이 나옵니다. 각각의 용법이 무슨 뜻인지를 먼저 알아보겠습니다.

1) “신랑”(19절) : 예수님께서 스스로를 ‘신랑’이라 하셨습니다. 그러면 신부는 누구입니까? 성경에서 예수님을 신랑이라고 호칭하는 구절들(계 21:2, 9 등)에서, 상대인 ‘신부’는 단일한 인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실한 성도들을 통칭한, 교회 또는 ‘새 예루살렘’이라는 비유적 표현으로 ‘무리’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20절) 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신랑이신 예수님께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에서 죽임을 당하실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죽임을 당한 후, 부활하시고 나서도, ‘신랑’ 예수님은 승천하셔서 제자들과는 작별을 하게 됩니다. 이것을 미리 알려 주신 것이라고 보입니다.

‘신랑’과 ‘신부’는 세상의 모든 인간관계 가운데 가장 친밀하고 불가분리한 관계입니다. 이 특별한 관계를 선택해서 우리 주님께서 성도와의 관계를 표현하셨습니다.

이들이 이별한다면, 신랑(예수님)도 신부(성도들)가 그리워 눈물을 짓고, 신부도 신랑이 그리워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작별은 영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언젠가는 신랑(예수님)이 돌아올 것이고, 그러면 영원토록 헤어지지 않을 하늘나라 가족이 성립될 것입니다.(계 22:17)

2) “새 포도주”(22절) : 예수님께서 스스로 “새 포도주”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사용된 비유적 표현으로서의 포도주는 음료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새 포도주’와 ‘헌 부대’의 관계를 빌려서 표현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새 포도주를 헌 부대에 넣었다가는, 새 포도주가 발효되면서 헌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쏟아지고, 헌 부대도 찢어진다는 설명이셨습니다.

이 비유적 표현에서 암시 받는 것은, ‘새 포도주’가 예수님께서 전해 주신 ‘하늘나라의 복음’이라면, ‘헌 부대’는 옛 율법주의 관습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옛 율법주의 관습’은 그것대로 이스라엘 민족을 위하여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지만, 이제 예수님의 하늘나라 복음과 공존하기에는 서로 상충되는 요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예를 들어, 사도 바울이 율법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에는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과 정면으로 맞부딪치는 입장에 설 수 밖에는 없었습니다. 철저히 기독교인들을 박해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율법주의의 관습을 벗어버리고 나서는, 복음의 으뜸 사도가 되었던 것입니다.

3) “새 천 조각”과 “헌 옷”(21절) : 이 비유적 표현 역시, 위의 새 포도주(복음)와 헌 부대(옛 율법주의)의 대비처럼, ‘새 천 조각’은 주님의 복음을 말하고, ‘헌 옷’은 구약의 종교관습을 말합니다.

*<결어> : 예수님은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다고 하셨습니다.(마 5:17) 율법으로는 인간이 정죄 받을 수 밖에 없으나, 십자가의 복음은 모든 인류(죄인)를 구원한다 하셨습니다.(롬 3: 21-26 참조)

<기도> 주 하나님, ‘신랑’이신 예수님께서 ‘신부’인 저희 모든 성도들과 더불어 영원한 하나님의 가정을 이룰 약속을 주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이 약속을 저희의 믿음의 토대로 삼고 오늘도 소망에 넘친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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