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이 온다 해도, 대비를 않는 인간

<공현 후 3주일 본문 묵상> (공동번역개정판)

{ 구약 } 요나서 3장 1-5, 10절 [1] 야훼의 말씀이 또다시 요나에게 내렸다. [2] “어서 저 큰 도시 니느웨로 가 내가 일러준 말을 그대로 전하여라.” [3] 요나는 야훼의 말씀대로 곧 길을 떠나 니느웨로 갔다. 니느웨는 굉장히 큰 도시로서 돌아다니는 데 사흘이나 걸리는 곳이었다. [4] 요나는 니느웨에 들어가 하루 동안 돌아다니며,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는 잿더미가 된다.” 고 외쳤다. [5] 이 말에 니느웨 사람들은 하느님을 믿고 단식을 선포하였다. 높은 사람 낮은 사람 할 것 없이 모두 굵은 베 옷을 입고 단식하게 되었다. … [10] 이렇게 사람들이 못된 행실을 버리고 돌아서는 것을 보시고 하느님께서는 뜻을 돌이켜 그들에게 내리시려던 재앙을 거두시었다.

*** 요나는 20세기의 빌리 그레엄 목사 만큼이나 영향력 있는 설교자였던 것 같습니다. 니느웨 성에 들어가 하루 동안 돌아다니며 가두전도를 했는데, 니느웨 성 사람들이 굵은 베 옷으로 갈아입고 모두 회개했습니다. 심지어 그 나라 임금도 용상에서 일어나 어의를 굵은 베 옷으로 갈아입고 잿더미 위에 앉아 단식했다고 했습니다.(욘 3:4-6)

니느웨 성의 어린이들의 수가 십이만이라고 했으니까(욘 4:11), 어른들까지 합하면 그 두 세 곱은 되지 않았을까 추산합니다.

요나가 그들에게 전한 하느님의 말씀은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는 잿더미가 된다.” 는 단순한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 한 마디에 니느웨 사람들은 지난 날에 그들이 범한 죄를 깨달았고, 그리하여 곧바로 회개의 자세로 들어갔던 것입니다. 참으로 요나 선지자 시대의 니느웨 사람들은 회개의 모범을 역사에 남긴 백성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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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신 } 고린도전서 7장 29-31절 [29] 형제 여러분, 내 말을 명심하여 들으십시오. 이제 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제부터는 아내가 있는 사람은 아내가 없는 사람처럼 살고 [30] 슬픔이 있는 사람은 슬픔이 없는 사람처럼 지내고 기쁜 일이 있는 사람은 기쁜 일이 없는 사람처럼 살고 물건을 산 사람은 그 물건이 자기 것이 아닌 것처럼 생각하고 [31] 세상과 거래를 하는 사람은 세상과 거래를 하지 않는 사람처럼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보는 이 세상은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의 처음 독자들(고린도 교회 신자들)을 향해서 “이제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본문 29절) 고 전제했습니다. 무슨 때를 말합니까? 흔히 이런 분위기의 말씀들은, 예수님의 재림의 때를 말씀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재림의 때라고 단언하기는 힘든 이유가 하나 있습니다.

가령 앞의 구절(고전 7:26)에,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재난을 생각한다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얼마 남지 않은 위기’ 가 ‘임박한 모진 박해의 때’를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때에, 그리스도인들의 삶에서 ‘외형적 갖춤’(결혼, 살림, 부, 희로애락)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임박한 종말에 대비하면서, <믿음을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하기를 바울 사도는 권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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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 } 마르코 복음서 1장 14-20절 [14]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께서 갈릴래아에 오셔서 하느님의 복음을 전파하시며 [15] “때가 다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 하셨다. [16] 예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호수에서 그물을 던지고 있는 어부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를 보시고 [17]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하고 말씀하셨다. [18] 그들은 곧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다. [19] 예수께서 조금 더 가시다가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이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는 것을 보시고 [20] 부르시자 그들은 아버지 제베대오와 삯꾼들을 배에 남겨둔 채 예수를 따라나섰다.

***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선포하신 첫 말씀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하셨습니다. 그러면 ‘다가온’ 하느님의 나라가 구체적으로 언제 세상에 임했습니까?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됨과 동시에 하느님의 나라가 시작되었습니다.

공생애 서두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불러 함께 지내시며, 그들을 예수님의 전권대리인(사도)으로 양육하십니다. 그렇게 시작된 ‘전권대리인의 양육’이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시고 다시 재림하시는 날까지 세상에서 계속되어야 할 ‘하느님 나라 건설’ 사업입니다.

이것이 신학교를 운영하는 것을 의미합니까? 물론, 신학교도 그 일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신학교는 ‘하느님 나라 건설’의 간부들을 양성하는 기관이라면, 이 세상 방방곡곡에 세워진 모든 교회의 모든 활동이 ‘하느님 나라 건설 사업들’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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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 년 동안 ‘예수님의 재림과 역사를 끝맺는 날이 곧 온다’고 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지 않는 것을 보면, 안 오는 것이거나, 아니면 그렇게 가상만 하고 살도록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재림의 약속을 변질시켜서는 안됩니다. 재림은 실제입니다. 성직자들과 성도들이 한결같이 재림의 날을 맞을 대비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기도> 주 하느님, 저희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전권대리역으로 훈련을 받아서, 세상에 나아가 사람들에게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하도록 인도하는 사람들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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