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새번역)
{ 사도행전 22장 6-10, 14-16절 } [6] “가다가, 정오 때쯤에 다마스쿠스 가까이에 이르렀는데, 갑자기 하늘로부터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추었습니다. [7] 나는 땅바닥에 엎어졌는데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8] 그래서 내가 ‘주님, 누구십니까?’ 하고 물었더니, 그는 나에게 대답하시기를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이다’ 하셨습니다. [9]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은, 그 빛은 보았으나, 내게 말씀하시는 분의 음성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10] 그 때에 내가 ‘주님, 어떻게 하라 하십니까?’ 하고 말하였더니,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서, 다마스쿠스로 가거라. 거기에는 네가 해야 할 모든 일을 누가 말해 줄 것이다. …
[14] 그때에 아나니아가 내게 말하였습니다. ‘우리 조상의 하나님께서 당신을 택하셔서, 자기의 뜻을 알게 하시고, 그 의로우신 분을 보게 하시고,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습니다. [15] 당신은 그분을 위하여 모든 사람에게 당신이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는 증인이 될 것입니다. [16] 그러니 이제 망설일 까닭이 어디 있습니까? 일어나, 주님의 이름을 불러서, 세례를 받고, 당신의 죄 씻음을 받으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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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율법의 의로는 흠 잡힐 데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빌 3:6) 이것이 사도 바울의 자기 증언이었습니다. 자기 통제가 철저한 사람이었고, 타인에 대해서도 (아마도) 용서가 없는 정말 칼같은 라삐였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회심했다는 것은 보통사람들의 ‘회개’와는 차원이 다른 독특한 것이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예언서나 시편 같은 문학서집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던 ‘회개’의 개념을 사도 바울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보통사람들이, 그들의 일상적인 죄의 길에서 돌이키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요. 바울의 회심은 그런 ‘회개’의 개념이 아니었을 듯합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주의자였습니다. 또 대제사장을 둘러싸고 있는 유다인 최고권력자들의 수하에서 그들의 일을 돕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상당한 숫자로 운집하고 있던 세로운 세력, ‘예수’라는 나사렛 청년의 가르침을 따르는 무리들이, ‘모세의 율법을 훨씬 능가한다는 사랑의 교훈’ 을 따르는 데 대해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척결하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그것은 애국심이었고, 신앙심이었기 때문에, 바울은 이 일을 목숨을 걸 사명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 속에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총책임을 맡고 있는 ‘기독교 말살’의 과정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죽음에 임하는 자세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자기처럼 율법으로 흠 잡힐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죽음에 임해서도 아무 두려움이 없이, 오히려 박해자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죽어갔습니다.
지금까지 그가 예루살렘에서 만나던 대제사장이나 율법의 대가들에게서는 보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바울이 지금껏 섬겨 왔던 창조주 하나님을 정녕 최고의 하나님으로 믿고 사는 사람들이라면, ‘저 사람들’(그리스도인들)에게서 보는 생사관이 옳은 것임을 깨닫고, 그의 마음에 존경심을 가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 갈등을 풀어내지 못한 채로, 자기가 맡고 있는 ‘기독교 말살’을 위해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부활-승천하신 예수님을 조우하게 된 것입니다. 강렬한 빛으로 그의 앞길에 막아서신 예수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너무도 환한 빛이 그를 감쌌으므로, 바울은 한때 시력을 잃었습니다. 그는 땅에 엎어져,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본문 말씀대로 그는 다른 이의 도움을 받아 다메섹으로 들어가, ‘아나니아’ 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고, 자신의 새로운 사명이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 증거’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후, 그는 통렬한 회개(딤전 1:13)와 함께, 율법의 종교가 아닌,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기독교 제1대 신학자가 되었습니다.
( 2 ) 우리들은 어떻게 기독교인이 되었습니까? 기독교인이 되는 것은 놀라운 역사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사건이었는지 몰라도, 자신에게 만은 조용히 일어나는 일일 수가 없습니다. 진정 ‘빅 뱅’ 입니다. 사도 바울의 회심담은 사도행전에 만도 세 차례 나오고, 그의 서신에도 간략하게 여러 번 등장합니다.
우리들의 회심도 우리 만의 역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개입하셨던 역사, 구원의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숨길 것이 아니라, 기회를 얻으시는 대로, 많이 증언하셔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함께 경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 주 하나님, 사도 바울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를 통해서도 구원의 역사를 이루심을 감사드립니다. 저희 모두가 회심, 회개의 증언자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