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제6일, 말씀 묵상> ………………….. (새번역)
{ 복음 } 마태복음서 6장 12, 14-15절 ……………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 [14] 너희가 남의 잘못을 용서해 주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해 주실 것이다. [15] 그러나 너희가 남을 용서해 주지 않으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지 않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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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오스카 와일드는 19세기 후반에 살았던 영국의 시인이요, 극작가로 이름있는 이였습니다. 그가 어떤 부끄러운 일로 감옥생활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를 회고하면서 쓴 ‘옥중기’라는 그의 저서에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죄를 용서 받는다는 것은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그런데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단 한 분, 곧 예수님께서 내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그런데 조건이 하나 있다고 했습니다. ‘네가 남의 잘못을 용서한다면, 나도 너의 죄를 용서해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죄 용서 받음, 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더구나 내가 용서하는 일에는 돈도 노력도 필요없고, 다만 내가 용서만 하면 된다지 않습니까?”
( 2 ) ‘64번 학생의 고백록’이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시절에 그의 반은 모두 70명이었답니다. 키 순서대로 제일 작은 학생을 1번으로 하고, 필자 자신은 키가 큰 편이어서 64번이었습니다.
그런데 자기와 짝궁으로 앉은 65번이 기운 꽤나 쓸만 해 보였답니다. 한동안 구순하게 잘 지냈는데, 어느날 티격태격 싸움이 붙었답니다. 그래서 65번을 잽싸게 몇 방 때렸는데, 그때 마침 종례를 하러 담임선생님께서 들어오시고, 싸움은 중단되었답니다.
그런데 65번이 씩씩거리고 투덜투덜하면서 분통이 터지는 분위기였답니다. 64번인 필자는 마음 속으로, 기운이 쎄 보이는 저 친구가 다시 싸움을 계속하자고 하면, 난 한참 얻어맞게 생겼다 하면서 염려스러웠답니다.
종례는 끝나고, 65번이 자리에서 일어서기에, 64번은 ‘난 이제 죽었다’ 생각하고 있는데, 65번이 자기 앞으로 다가와 손을 내밀며, “싸움 그만 하자. 우리 잘 지내자. 어떠냐?” 하더랍니다. 그래서 얼떨떨해서 악수는 했지만, 잘 믿어지지 않았답니다.
65번이 제안한 대로, 졸업할 때까지 65번과 싸우기는 커녕, 사이좋게 잘 지내면서, 어른이 된 지금까지 65번과의 추억을 교훈삼아, 64번 자신도 다른 사람과 다투는 일이 없이 지내 왔다고 합니다.
( 3 ) 종교개혁기에 스위스에서 활동하던 즈빙글리라는 이가 있습니다. 그가 이른 아침 알프스의 한 언덕길로 산책하던 중에 염소 두 마리가 비탈길에서 한 마리는 내려오고 또 한 마리는 올라가던 샛길에서 만난 장면을 포착했답니다.
염소들이 고집이 세서, 그들이 싸움 한 판 벌일 것으로 짐작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올라가던 염소가 그 자리에 엎드리더랍니다. 내려오던 염소가 상대방의 등을 짚고 통과한 후, 엎드렸던 염소가 일어나서 가던 길을 계속해서 올라가더랍니다.
즈빙글리는 자기 자신이 살아온 자세를 돌이켜 보며, 위신을 세우기 위해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한 일들이 없었던가 반성하는 기회가 되었다고 회고했습니다.
( 4 ) 저는 한 연로한 여신자 분의 임종기도를 인도하러 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할머니가 누워 계신 방으로 가족들이 한 사람씩 들어가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저는 방 바깥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할머니의 말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저 여우같은 며느리들은 보기 싫다. 들여 보내지 말아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여우같았기로서니 임종을 앞둔 지금 용서 못할 사람이 어디 있나? 지금 운명하시면, 곧장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인데, 참 안타깝다.’
<기도> 용서의 하나님, 저희가 용서의 사람이 됨으로써,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